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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귀

지친 채 커져 버린 사랑을 믿어? 기적을 믿어? 빛에 마구 섞여 드는 빛 입자에서 감아도 떠도 마찬가지인 두 눈 속에서 잠보다 조용히 떠다니는 얼음 조각 위에서 지친 채 커져 버린 사랑을 믿어? 숨을 헐떡이며 돌아온 너는 들려줄 말이 있다고 했지. 태양 빛이 조금 지워 버린 너의 귀는 오래전 우리가 심었던 나무 아래서도 꽁꽁 얼어붙어 있었어. 조그맣고 슬픈 고집처럼, 어설픈 가장자리처럼. 알 수 없는 미래처럼. 너는 가방에서 윤기나는 솔방울 여럿을 꺼내 자랑스레 돗자리에 늘어놓았다. 이건 꿈, 이건 바다, 이건 혼란, 이건 절벽, 이건 플라스틱, 이건 검정, 이건 대통령, 이건 무지개, 이건 건총, 이건 테이블, 이건 기쁨, 이건 침묵, 이건 모서리, 이건 시위대, 이건 용기…… 솔방울 한 알이 이토록 가볍고 평평하고 시시한 우주라니 나.. 더보기
조금만 스쳐도 혀가 베이는 달콤 거짓을 말하는 입안에서 색색의 동그라미가 굴러 나왔지. 혀끝의 평행우주. 헤어짐을 휘감는 중력들. 다정 속에 묻어둔 난간처럼 조금만 스쳐도 혀가 베이는 달콤. 늑골 사이마다 물방울이 매달린 날에는 보름의 문을 열고 들어가 차오르는 수심을 바라봤지. 오래 머금은 고백들 볼 안에 주름질 때, 혀 밑으로 감겨드는 푸른 거품들. 달고 짠 바람이 분다고 너는 두 볼을 부풀리며 웃었다. 방금 도착한 행성을 조금씩 핥아 먹으며, 얼마간 최소한의 깊이로만 스며들기로 했지. 상처 난 뿔을 감춘 채 무리로 숨어드는 어린 사슴처럼. 더 이상 무지개 양 끝이나 물의 뿌리 같은 것들을 생각하지 않기로 했지. 낯설어진 이름을 가볍게 더듬으며 이대로 잠시만 머무르기로. 서투른 허밍으로 풍선을 불며 호흡을 나누었지. 우리의 가장 사.. 더보기
말과 말 사이의 삶들이 아프기 시작했다 아픈 데는 없냐고 당신이 물었다. 없다, 라고 말하는 순간, 말과 말 사이의 삶들이 아프기 시작했다. 이병률, 눈사람 여관 더보기
너를 생각하는 낮은 길고 밤은 짧았어 너를 생각하는 낮은 길고 밤은 짧았어 매일의 악몽이 급행으로 치달을 때면 내처 낡은 철벽들을 향해 내달리고 싶었어 세상 너라는 절벽을 향해 돌진하고 싶었어 궤도 없는 청춘열차처럼 막무가내로 정끝별, 세계의 카트 더보기
잘라내도 잘라내도 평생 자라나고야 마는 "당신은 그를 얼마나 사랑하나요" 하고 묻는다면, 나는 외면하며 "손톱만큼이요" 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돌아서서는, 잘라내도 잘라내도 평생 자라나고야 마는 내 손톱을 보고 마음이 저려 펑펑 울지도 모른다 왕구슬, 손톱깎이 더보기
너 죽은 후에도 노을은 저렇게 붉고 아름다울 것이다 너 죽은 후에도 노을은 저렇게 붉고 아름다울 것이다 무심하게, 다만 무심하게 권혁웅, 너 죽은 후에도 노을은 더보기
삶은 고질병이 아닌 고칠 병이란 생각이 든다 내가 속해 있는 대낮의 시간 한밤의 시간보다 어두울 때가 있다 어떤 날은 어안이 벙벙한 어처구니가 되고 어떤 날은 너무 많은 나를 삼켜 배부를 때도 있다 나는 때때로 편재해 있고 나는 때때로 부재해 있다 세상에 확실한 무엇이 있다고 믿는 것만큼 확실한 오류는 없다고 생각한 지 오래다 불꽃도 타오를 때 불의 꽃이라서 지나가는 빗소리에 깨는 일이 잦다 고독이란 비를 바라보며 씹는 생각인가 결혼에 실패한 것이 아니라 이혼에 성공한 것이라던 어느 여성 작가의 당당한 말이 좋은 비는 때를 알고 내린다고 내게 중얼거린다 삶은 고질병이 아닌 고칠 병이란 생각이 든다 절대로 잘못한 적 없는 사람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사람뿐이다 물에도 결이 있고 침묵에도 파문이 있다는 걸 미리 알았더라면 사람이 무서운 건 마음이 있어.. 더보기
사랑했던 것들은 모두 나를 비껴갔다 나는 안녕한가? 슬픔이 자꾸 잔잔하다 눈길 닿는 모든 곳마다 선명한 정지의 경고 푸르게 푸르게 깜빡이는 신호 앞에서 오래 머뭇거린다 해도 결국, 건너고 말 것이라는 예감 우회하시오 천천히 죽어가는 물고기의 눈을 들여다본 기억이 있다 요동치던 한 세계가 정지하기까지 그닥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한 잎 지고 다시 잎 지기까지의 간격만큼만 고요하게 간직될 수 있다는 것 그 외 모든 시간은 끊임없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는 것 익숙해지지 말아야 할 것들을 미리 알아버린 뒤에도 나는 정말 안녕한가? 잎들은 제 무게만큼 지상으로 기울어 그늘을 만들고 돌아보면 소리도 없이 화르르 쏟아져 내리는, 사랑했던 것들은 모두 나를 비껴갔다 세월만이 정면으로 달려와 내게 충돌한다 예현연, 물고기좌에서 한 잎 떨어졌다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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