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귀 썸네일형 리스트형 사람의 귀퉁이는 조금씩 슬픈 기척을 가졌지 입 안에서 별들이 자라나는 저녁에는 자주 피를 흘렸다 찔린 자리마다 고여드는 낮은 지붕들 흘린다는 말은 다정했기에 사람의 귀퉁이는 조금씩 슬픈 기척을 가졌지 팔꿈치를 부딪치면 차가운 빛으로 가득해지던 몸속 감싸 쥔 자리가 얼룩으로 깜빡이면 불가능에 대해 생각해 모름의 온도와 진눈깨비의 각도에 대해 내리던 비가 얼어 몸을 걸어 잠글 때 창문은 무슨 꿈을 꾸나 흐르던 비가 멈칫 굳어갈 때 몸은 조금만 스쳐도 달아나는 방향들이 있어 겨울의 창틀은 더욱 분명해지고 비의 마음이 어긋난 자리마다 버려진 경계들이 무성해졌다 눈사람처럼 모서리를 버려가며 잠겨들고 싶었지 드물다는 말은 점차 희미해져서 깨어진 잔에 입술을 대고 겨울이 오기만을 기다렸어 이혜미, 순간의 모서리 더보기 병든 것들은 늘 그랬다 쉽게 칼날 같았고 쉽게 울었고 쉽게 무너졌다 어느 날 떠나왔던 길에서 너무 멀리 왔다는 걸 깨달을 때. 모든 게 아득해 보일 때가 있다. 이럴 때 삶은 참혹하게 물이 빠져 버린 댐 가장자리의 붉은 지층이다. 도저히 기억되지 않으리라 믿었던 것들이 한눈에 드러나는 그 아득함. 한때는 뿌리였다가, 한때는 뼈였다가, 또 한때는 흙이었다가 이제는 지층이 되어 버린 것들, 그것들이 모두 아득하다. 예쁘장한 계단 어디에선가 사랑을 부풀리기도 했고, 사랑이 떠나면 체머리를 흔들기도 했다. 그래도 돌아온다고 믿었던 사랑은 없었다. 떠나면 그뿐, 사랑은 늘 황혼처럼 멀었다. 병든 것들은 늘 그랬다. 쉽게 칼날 같았고 쉽게 울었고 쉽게 무너졌다. 이미 병들었는데 또 무엇이 아팠을까. 병든 것들은 죽고 다시 오지 않았다. 병든 것들은 차오르는 물 속에서 죽음 이외에 .. 더보기 너를 보고 마음이 생기는 것이 슬퍼 사랑해 햇빛이 쏟아져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걸 사랑해 사랑해 손끝마다 결과가 생겨나게 될 거야 너를 보고 마음이 생기는 것이 슬퍼 심장이 뛰게 되고 손가락이 생겨나서 그 손가락 끝에 만지고 싶은 얼굴들이 자꾸 생각나서 봄이 온다 꽃이 핀다 벌어진다 따뜻한 손길에 어김없이 젖는 것들을 봐 고정된 나비처럼 할 말 없는 입가 압핀을 전부 쏟아내 웃는 표정을 사진 속에 박아 버려도 꼭짓점으로부터 시간이 흘러내린다 만져 주고 고마워 한없이 고마운 마음 밖으로 쏟아져 나가는 손길 베인 곳에서 쇠맛이 나는 이유를 우리 따위가 알 수 있겠니 표류한 배는 나아가기 위해서 제가 가진 것들을 다 버리고 있는데 당장 지혈해야 하는 자의 심장이 더 맥박 치는 이유가 뭘까 문을 찾기 위하여 더러운 벽을 손끝으로 스치며 지나는 중이.. 더보기 햇볕이 목뼈들을 조이고 있었다 네 농담이 어제와 같지 않았다 꿈이나 꿔야지, 나는 입을 오므리고 모로 누운 너의 등에다 씹다 만 껌을 붙여 두었다 허우적거리는 너를 보았는데 너는 너무 멀었고 나는 웃고 있었다 웃음은 계속되었다 긴 잠에서 깨어 다시 그 껌을 씹다 보면 나는, 아주, 오래, 걸어 왔구나, 창 너머로 낡은 다리를 보는 걸 우리는 좋아했는데 그곳을 찾는 건 떨어지려는 사람뿐이었다 여름이었고 마당에 작은 목뼈들이 흩어져 있었다 햇볕이 목뼈들을 조이고 있었다 가능한 모든 장소에서 농담이 흘러넘치고 비가 내릴 것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듯 그들은 고요를 이어 갔다 한쪽에서 누군가는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여름이 끝나도 여름이었다 하품을 하고 아카시를 꺾고 사랑한다 안 사랑한다 사랑한다 안 사랑한다 느리고 더운 바람에.. 더보기 죽고 싶다는 말처럼 깊어지도록 밀려오시길 이 막막함이 달콤해지도록 나는 얼마나 물고 빨았는지 모른다. 헛된 예언이 쏟아지도록 나의 혀는 허공의 입술을 밤새도록 핥아댔다. 막막함이여 부디 멈추지 말고 나의 끝까지 오시길, 나의 온몸이 막막함으로 가득 채워져 투명해질 때까지 오고 또 오시길 나 간절히 원했다. 나는 이미 꺾였으니 물밀듯이 내 안으로 들어오시길. 그리하여 내게 남은 것은 나뿐이라는 것도 어쩌면 이미 낡아버린 루머일지 모른다는 사실을 깊이깊이 내 몸속에 새겨주시길. 내 피가 아직도 붉은지 열어보았던 날 뭉클뭉클 날 버린 마음들을 비로소 떠나보냈듯이 치욕을 담배 피우며 마음도 버리고 돌아선 길이 죽고 싶다는 말처럼 깊어지도록 밀려오시길. 막막함으로 밥 먹고 사는 날까지. 이승희, 막막함이 물밀듯이 더보기 오늘도 떠돌다 가리라 그래도 생은 아름다웠으므로 나는 네 속에서 사라지고 싶었다 바람 부는 세상 너라는 꽃잎 속에 활활 불타고 싶었다 비 오는 세상 너라는 햇빛 속에 너라는 재미 속에 너라는 물결 속에 파묻히고 싶었다 눈 내리는 세상 너라는 봄날 속에 너라는 안개 속에 너라는 거울 속에 잠들고 싶었다 천둥 치는 세상 너라는 감옥에 갇히고 싶었다 네가 피안이었으므로 그러나 이제 너는 터미널 겨울저녁 여섯시 서초동에 켜지는 가로등 내가 너를 괴롭혔다 인연은 바람이다 이제 나같은 인간은 안된다 나 같은 주정뱅이, 취생몽사, 술 나그네, 황혼 나그네 책을 읽지만 억지로 억지로 책장을 넘기지만 난 삶을 사랑한 적이 없다 오늘도 떠돌다 가리라 그래도 생은 아름다웠으므로 이승훈, 너라는 햇빛 더보기 괜찮아 아직 바다는 오지 않으니까 바다가 나한테 오지 않았어. 겁먹은 얼굴로 아이가 말했다. 밀려오길래, 먼 데서부터 밀려오길래 우리 몸을 지나 계속 차오르기만 할 줄 알았나 보다 바다가 너한테 오지 않았니 하지만 다시 밀려들기 시작할 땐 다시 끝없을 것처럼 느껴지겠지 내 다리를 끌어안고 뒤로 숨겠지 마치 내가 그 어떤 것, 바다로부터조차 널 지켜줄 수 있는 것처럼 기침이 깊어 먹은 것을 토해내며 눈물을 흘리며 엄마, 엄마를 부르던 것처럼 마치 나에게 그걸 멈춰줄 힘이 있는 듯이 하지만 곧 너도 알게 되겠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기억하는 일뿐이란 걸 저 번쩍이는 거대한 흐름과 시간과 成長 (성장), 집요하게 사라지고 새로 태어나는 것들 앞에 우리가 함께 있었다는 걸 색색의 알 같은 순간들을 함께 품었던 시절의 은밀함을 처음부터 모래로 .. 더보기 헤어질 때 더 다정한 쪽이 덜 사랑한 사람이다 그래봤자 결국 후두둑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일 뿐. 오늘부터 나는 반성하지 않을 테다. 오늘부터 나는 반성을 반성하지 않을 테다. 그러나 너의 수첩은 얇아질 대로 얇아진 채로 스프링만 튀어오를 태세. 나는 그래요. 쓰지 않고는 반성할 수 없어요. 반성은 우물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너의 습관. 너는 입을 다문다. 너는 지친다. 지칠 만도 하다. 우리의 잘못은 서로의 이름을 대문자로 착각한 것일 뿐. 네가 울 것 같은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면 나는 둘중의 하나를 선택하겠다고 결심한다. 네가 없어지거나 내가 없어지거나 둘 중의 하나라고. 그러나 너는 등을 보인 채 창문 위에 뜻 모를 글자만 쓴다. 당연히 글자는 보이지 않는다. 가느다란 입김이라도 새어나오는 겨울이라면 의도한 대로 너는 네 존재의 고독을 타인에게 .. 더보기 이전 1 ··· 5 6 7 8 9 10 11 ··· 2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