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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속에는 심장이 없는 해파리들로 가득하다 해파리는 심장이 없다. 심장뿐만 아니라 위와 여러 내장 기관도 없다. 어떤 해파리는 죽지 않고 영원히 살기도 한다. 바다 속에는 심장이 없는 해파리들로 가득하다. 그들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으며 유유히 헤엄치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닌다. 브룩 바커, 『동물들의 슬픈 진실에 관한 이야기』 더보기
외눈박이 물고기처럼 사랑하고 싶다 외눈박이 물고기처럼 살아가고 싶다. 외눈박이 물고기처럼 사랑하고 싶다. 두눈박이 물고기처럼 세상을 살기 위해 평생을 두 마리가 함께 붙어다녔다는 외눈박이 물고기 비목처럼 사랑하고 싶다. 우리에게 시간은 충분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만큼 사랑하지 않았을 뿐 외눈박이 물고기처럼 그렇게 살고 싶다. 혼자 있으면 그 혼자 있음이 금방 들켜 버리는 외눈박이 물고기 비목처럼 목숨을 다해 사랑하고 싶다. 류시화,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 더보기
나는 지구에 잘못 배달되었다 나는 지구에 잘못 배달되었다 팔과 다리가 조금씩 어긋난 감정을 입고 요즘 사람 행세를 했다 웃고 떠는 밤에는 집에 돌아와 불 꺼진 방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아직 뜯어보지 않은 선물처럼 낱말 맞히기를 풀었다 세로줄을 다 풀지 못했는데 창밖으로 가로줄이 배달되었다 그러나 나에겐 아직 풀지 않은 아침이 더 많았다 그 어색함이 아득해 냉장고 속 케이크를 푹푹 떠먹었다 얼굴 속에서 한참을 앉아 있었는데 배 속에서 잃어버린 퍼즐조각이 발견되었다는 기사가 보도되었다 귀를 접어 귓속에 넣었다 비로소 사람처럼 문밖으로 걸어 나갈 수 있었다 임지은, 낱말 케이크 더보기
1월엔 뭐든지 잘될 것만 같습니다 1월엔 뭐든지 잘될 것만 같습니다 총체적 난국은 어제까지였습니다 지난달의 주정은 모두 기화되었습니다 2월엔 여태 출발하지 못한 이유를 추위 탓으로 돌립니다 어느 날엔 문득 초콜릿이 먹고 싶었습니다 3월엔 괜히 가방이 사고 싶습니다 내 이름이 적힌 물건을 늘리고 싶습니다 벚꽃이 되어 내 이름을 날리고 싶습니다 어느 날엔 문득 사탕이 사고 싶었습니다 4월은 생각보다 잔인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단 하나, 한참 전에 이미 죽었기 때문입니다 5월엔 정체성의 혼란이 찾아옵니다 근로자도 아니고 어린이도 아니고 어버이도 아니고 스승도 아닌데다 성년을 맞이하지도 않은 나는, 과연 누구입니까 나는 나의 어떤 면을 축하해줄 수 있습니까 6월은 원래부터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꿈꾸지 않는 것은.. 더보기
삿포로에 갈까요 11월과 12월 사이를 좋아합니다. 그건 당신을 좋아한다는 말입니다. 조금씩 눈비가 뿌리고 있으니 어쩌면 잠시 후에 눈송이로 바뀌어 이 저녁을 온통 하얗게 뒤덮을지도 모르니 이곳 강변의 여관에서 자고 가기로 합니다. 창문을 열어놓고 맥주를 한 병 마시는데 몸이 술을 마시지 말라고 하네요. 이야기할 사람이 없으면 술을 마시지 말라고 몸이 말을 걸어 옵니다. 그럼요, 술은 정말정말 좋은 사람이랑 같이 하지 않으면 그냥 물이지요. 수돗물. 언제였던가요. 덕유산에서 삼 개월을 여행자로 지낸 적이 있는데 매일매일 폭설이었고 나 또한 매일매일 눈사람이었습니다. 그 시간, 나는 모든 것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어요. 인생의 진하디진한 어떤 예감 같은 거요. 그 후로 나에게 생긴 병이 있다면 눈을 찾아.. 더보기
망각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Blessed are forgetful, for they get the better even of their blunders. 망각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자기 실수조차 잊기 때문이라. 니체, 영화 이터널 선샤인 中 더보기
여기가 아닌 다른 곳으로 가고 싶다 이것이 아닌 다른 것을 갖고 싶다. 여기가 아닌 다른 곳으로 가고 싶다. 괴로움 외로움 그리움 내 청춘의 영원한 트라이앵글. 최승자, 내 청춘의 영원한 더보기
덜 망가진 채로 가고 싶다 죽을 때 죽는다는 걸 알 수 있어? 죽으면 어디로 가는 거야? 죽을 때 모습 그대로 죽는 거야? 죽어서도 엄마는 내 엄마야? 때를 가늠하는 나무의 말로 여섯 살 딸이 묻다가 울었다 입맞춤이 싫증나도 사랑은 사랑일까 반성하지 않는 죄도 죄일까 깨지 않아도 아침은 아침일까 나는 나로부터 도망칠 수 있을까 흐름을 가늠하는 물의 말로 마흔 넷의 나는 시에게 묻곤 했다 덜 망가진 채로 가고 싶다 더 이상 빚도 없고 이자도 없다 죽어서야 기억되는 법이다 이젠 너희들이 나를 사는 거다 어둠을 가늠하는 속 깊은 흙의 말로 여든 다섯에 아버지는 그리 묻히셨다 바닥을 향해 피는 상수리 꽃을 마주하여 젖은 물살을 저어가는 지느러미뼈를 마주하여 흙에서 깨어나는 달팽이 촉수를 마주하여 고스란히 제 짐 지고 제 집에 들어앉듯 다..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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