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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속에는 심장이 없는 해파리들로 가득하다 해파리는 심장이 없다. 심장뿐만 아니라 위와 여러 내장 기관도 없다. 어떤 해파리는 죽지 않고 영원히 살기도 한다. 바다 속에는 심장이 없는 해파리들로 가득하다. 그들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으며 유유히 헤엄치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닌다. 브룩 바커, 『동물들의 슬픈 진실에 관한 이야기』 더보기
사랑에는 언제나 약간의 망상이 담겨 있다 사랑에는 언제나 약간의 망상이 담겨 있다. 그러나 망상 속에는 약간의 이성이 깃들어 있다.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더보기
왜 모든 사람이 사랑에 미치지 않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너무나 아름답고 너무나 매력적이었으며 보통 사람들과는 너무나 달라 보였다. 그래서 그는 그녀의 구두가 딱딱거리면서 돌길 위를 걸을 때 왜 아무도 자기처럼 정신을 잃지 않는지, 그녀의 베일에서 나오는 숨소리에 왜 아무도 가슴 설레하지 않는지, 그녀의 땋은 머리가 바람에 휘날리거나 그녀의 손이 공중으로 날아오를 때, 혹은 황금 같은 미소를 지을 때에도 왜 모든 사람이 사랑에 미치지 않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콜레라 시대의 사랑』 더보기
너를 볼 때마다 화상을 입는다 너의 표정은 차갑고 너의 음성은 싸늘하지만 너를 볼 때마다 화상을 입는다 박건호, 섭씨 100도의 얼음 더보기
다시 태어나면 죽지 말아야지 죽어도 좋겠다 생각한 순간 너는 웃었고 나는 죽었다 다시 태어나면 죽지 말아야지 잠깐 또 생각을 했다 오래 봐야지 죽지 말아야지 말을 새긴 새빨간 것을 단번에 삼키니 나는 사랑을 하네 당연하단 듯이 네가 고개를 끄덕이네 아아 입안을 맴돌다 뱉은 얼룩이 사랑의 시가 되어 손끝으로 네게로 흘러간다 당연하단 듯이 꼭 정해져 있단 뜻처럼 마치 되감기라도 한 것처럼 삼킨 것이 두근거린다 너는 나를 사랑하지 사랑하기 위해 내가 태어난 것처럼 너는 웃었고 나는 앓았다 먼 시간을 걸어 결국 또 한 번 너를 사랑하는구나 죽어도 좋겠다 생각했다 향돌, 사랑의 시 더보기
나는 흔하고, 어디든 있고, 나는 흔하고, 어디든 있고, 그러니 내가 혼자서 울고 있는 것도 나쁘지는 않아 유희경, 오늘은 더보기
어쩌면 나는 물질이 아니라 절망 그 자체일지도 몰라 외로운 날에는 빛을 반사하던 천정이 꽃잎을 떨어뜨리며 손을 내밀어 그러면 향기의 입자들이 눈처럼 내리곤 하지 난 숨을 쉴 때마다 선명해지는 깃털의 무늬를 봐 저것 좀 봐 졸린 백조처럼 겨드랑이에 얼굴 비비는 스탠드 조명 그 창백한 광경 속으로 각기 다른 계절로 공기의 입자들이 자라나 그건 음표를 새기기 전 벌거벗은 호수가 되기도 하고 검은 안경테를 쓰고 노을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숲이 되기도 해 창밖은 온통 어두운 육성의 스피커를 매달고 있지 그 속에서 백야의 악기들이 촛농처럼 떨어지곤 해 그럴 때마다 난 비문(非文)으로 흔들리곤 해 도대체 누구일까? 외로움의 질량을 느끼자 영하의 잠을 청하는 자는, 외로움에 질식한다는 것은 빛이 묻은 부분만으로도 슬픈 마디의 음표가 될 수 있는 건가 봐 책상 위에는 두.. 더보기
세계가 점점 싱거워지던 날들 장마는 지속되고 수박은 맛없어진다. 여름이니까 그럴 수 있다. 전에도 이런 날이 있었다. 태양 아래, 잘 익은 단감처럼 단단했던 지구가 당도를 잃고 물러지던 날들이. 아주 먼데서 형성된 기류가 이곳까지 흘러와 내게 영향을 주던 시간이. 비가 내리고, 계속 내리고, 자꾸 내리던 시절이. 말하자면 세계가 점점 싱거워지던 날들이 말이다. 김애란, 『비행운』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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