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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 글귀 & 대사

이대로는 익사할 거라고 말한다 나는 물을 좋아하고 너는 물을 좋아하지 않는다 우리는 갈증으로 대립한다 물은 너의 감정이다 너의 기분에 따라 그날의 컵이 바뀌고 물의 온도가 달라진다 태도는 미온적이다 너는 웅크리고 있거나 드러누워 있다 나갔다 돌아오면 방은 침수되어 있다 너는 금붕어 두어 마리를 기르고 있다 그것들은 서로 먹고, 교배하고, 낳고, 먹기를 반복한다 창은 굳게 닫혀 있다 이대로는 익사할 거라고 말한다 너는 듣지 않는다 벽지는 자주 바뀐다 붉었다가 푸르렀다가, 꽃잎 무늬였다가 방울 무늬가 된다 나갔다 돌아오면 방은 침수되어 있다 벽지는 젖어 있다 너처럼 물고기들은 벽의 감정을 배운다 바라보거나 바라보지 않거나 물고기는 식탁 유리를 좋아하고 창의 유리를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유리를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살아 있는 아무것도 기르.. 더보기
밑바닥에는 모든 것이 돌아올 텐데 내가 아는 밑바닥이 있다. 물이 가득하지. 나는 한 번씩 떨어진다. 물에 젖어 못 쓰게 되는 노트. 집에는 빈 노트가 너무 많다. 버릴 수가 없네. 밑바닥이 들어 있다. 자꾸만 가라앉지. 어디도 내 집은 아니지만. 첨벙거리며 잔다. 베개가 둥둥 떠내려간다. 괜찮아. 어차피 바닥이라 다시 돌아와. 그가 이마를 쓰다듬어준다. 그는 손이 없고 나는 머리가 없지만 침대는 둘이 누우면 꽉 찬다. 투명해질수록 무거워지는 침대. 빈 노트. 빽빽하게 무엇이든 쓰자.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는다. 무너지는 창문 밑에서 나는 썼다. 늘 물에 젖었다. 알아볼 수 없어서 너무 행복하구나, 혼자 중얼거렸다. 한 번씩 떨어져서 내부로 들어가본다. 여럿이 함께 잠들면 더 고요하고 적막해서 무서웠지. 그 사이로 물결 소리가 난다. 죽.. 더보기
오늘 아침은 영원이 아니라서 가능하다 나는 정지한 세계를 사랑하려고 했다. 자신을 의심하지 않는 세계를. 나는 자꾸 물과 멀어졌으며 매우 견고한 침묵을 갖게 되었다. 나의 내부에서 나의 끝까지를 다 볼 수 있을 때까지. 저 너머에서 조금씩 투명해지는 것들을. 그것은 꽉 쥔 주먹이라든가 텅 빈 손바닥 같은 것일까? 길고 뾰족한 고드름처럼 지상을 겨누거나 폭설처럼 모든 걸 덮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가위바위보는 아니다. 맹세도 아니다. 내부에 뜻밖의 계절을 만드는 나무 같은 것 오늘 아침은 영원이 아니라서 가능하다 는 생각 같은 것 알 수 없이 변하는 물의 표면을 닮은. 조금씩 녹아가면서 누군가 아아, 겨울이구나. 희미해. 중얼거렸다. 이장욱, 얼음처럼 더보기
검은 바다 위로 네 몸뚱이가 오르내리고 있었다 따라오지 마, 따라오지 마, 따라오지 마, 세 번 외치고 돌아봤다 ​ 검은 바다 위로 네 몸뚱이가 오르내리고 있었다 나는 많은 말을 했다. 나는 외톨이이며, 나는 씩씩하다. 나는 왜소하지만, 왜소함을 넘어서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너는 금빛 머리를 휘날리며 웃고 있었다. 나는 더 많은 말을 했다. 나는 그 정도 침묵에 굴하는 자가 아니며, 침묵에는 침묵으로 맞서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따위의 법칙을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하다. 너는 곱슬머리가 흔들리도록 웃고 있었다. 너는 내 눈을 만진다. 내 코를 꼬집는다. 나는 계속해서 말한다. 나를 만지지 말라, 장-뤽 낭시가 쓴 책을 읽었다. 나는 종교가 없지만, 신은 믿을 만하다고 생각하므로, 너는 신을 믿느냐 묻고 싶었다. 너는 웃는다. 너는 웃다가 벤.. 더보기
여름이 오려면 당신이 필요하다 여름을 그리려면 종이가 필요해 종이는 물에 녹지 않아야 하고 상상하는 것보다 크거나 훨씬 작을 수도 있다 너무 큰 해변은 완성되지 않는다 너무 아름다운 해변은 액자에 걸면 가져가버린다 당신이 조금 느리고 천천히 말하는 사람이라면 하나 남은 검은색 파스텔로 아무도 오지 않는 바다를 그리자 당신의 여름이 기분이거나 기억에서 지우고 싶은 여행지라면 시원한 문장을 골라서 글로 쓸 수 있는데 여름이 오려면 당신이 필요하다 모두가 숙소로 돌아간 뒤에 당신이 나를 기다린다면 좋겠다 파도가 치고 있다 누군가는 고래를 보았다며 사진을 찍거나 주머니에서 만년필을 꺼내겠지만 고래는 너무 커서 밑그림을 그릴 수 없고 모래는 너무 작아서 부끄러움을 가릴 수 없다 바다가 보이는 방에서 두 사람을 기다린다 그들이 오면 여름은 지나.. 더보기
그냥 그 순간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어 기억이란 건 순서에 따라 차곡차곡 쌓이는게 아니야. 만약 그렇다면 오래된 기억들부터 차례로 잊혀지겠지? 그런데 기억들은 언제나 순서를 어기고 뒤죽박죽이 되거든,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엉뚱한 곳에서 엉뚱한 기억이 불쑥 솟아 오르는거야. 그것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순간. 이를테면 꿈 같은 데서 말이야. 그런 걸 아무렇지도 않게 넘길 수 있는 사람은 없어. 그 느낌은 뭐랄까 그래, 마치 멀미 같은 거야. 그 기분알지? 머리가 아프고 멍해지고 세상이 흔들리고, 심장에 커다란 추가 매달려 있는 것처럼 거북해서 토해버리고 싶은데 마음대로 안되고... 그냥 그 순간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어. 아주 무기력하게. 그냥 울면서. 황경신, 『부주의한 친절』 더보기
썰물처럼 사라지는 거야 "썰물처럼 사라지는 거야, 천천히. 그렇지만 멈추지 않고." 영화 작은 아씨들 中 더보기
우린 아마 기억하지 않아도 늘 생각나는 사람이 될 거야 우린 아마 기억하지 않아도 늘 생각나는 사람이 될 거야 그때마다 난 네가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고 내가 이렇게 웃고 있었으면 좋겠어 사랑하는 사람들은 왜 그렇잖아 생각하면 웃고 있거나 울게 되거나 그래서 미안하고 감사하고 그래 사랑해 처음부터 그랬었고 지금도 그래 원태연, 안녕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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