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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의 점괘를 받아적는 일이란 봄기운도 참 바람이 이렇게 달아 살살 간지럽겠다 몽글몽글 벚꽃의 아치 아래서 당신은 봄의 호작질에 놀아나는 중이다 시시로 연인의 입술에 달라붙은 꽃잎을 흡- 하고 숨결로 떼어내거나 꽃을 먼저 보낸 성급한 푸른 잎이 연인의 분홍 잇몸에 돋아나는 걸 보겠다 혹은 흩날리는 벚꽃이 허투루 흘리는 점괘 따위를 받아 모시거나, 애면글면하거나 구운몽에 문자로 수작을 건넨다는 말이 있다 오늘의 문자는 다름 아닌 벚꽃의 아스라한 점괘, 쉬 풀리는 점괘는 사설일 뿐 오래 헤매도 좋을 당신이겠다 마침 연인의 입매가 쉽사리 홀릴 운산은 아닌데, 애간장이라도 살살 무쳐 연인의 입맛을 돋울 수 있다면 그러니 당신, 화전놀이에 수작이 빠져서야 될까 꽃술이 서로의 입술에 번지듯 물들고 술잔의 꽃잎 돌 듯 꽝꽝 언 피가 돌고 나서야 .. 더보기
낭만 없는 낭만에서도 너의 낭만이 되어줄게 눈에는 하얀 구름을 붙이자. 서서히 모든 어둠이 낮이 될 수 있어. 반짝이는 구름이 초승달을 만나는 정류장은 갓난아이와 노인이 사랑을 할 수 있는 곳이니까. 시들함과 보들보들함이 만나 상쾌해지는 물감 같은. 구름을 노란 손으로 꽉 쥐면 달이 된다는 믿음으로 너의 낭만이 되어줄게. 코에는 점점 살이 찌는 낙엽을 달자. 살아나는 향기를 맡으면서 사라져가는 쓸쓸한 냄새를 잊자. 종이 꽃이 통통한 줄기와 닿는 오후는 백지 스케치북 한 페이지가 전시회장에 걸리는 황홀함이니까. 무제 같은 제목으로. 사라지는 소리가 재회의 약속 같은 계절에 너의 낭만이 되어줄게. 입에는 혀 가까이까지 낭만을 걸자. 낭만, 낭만. 부르기만 해도 불러지는 투명의 사건처럼. 침샘이 말라도 낭만의 노래가 도착할 때까지. 잎이 자라는 것은 .. 더보기
별이 떨어진다면 당신이 있는 공간으로 별이 떨어진다면 당신이 있는 공간으로 네가 아침잠에서 깨어 방문을 열었을 때 천장을 뚫고 쏟아지는 별들 나는 그 별을 함께 주워 담거나 그 별에 상처 난 너의 팔을 잡아 주고 싶었다 지나 보면 역시나 난 할 줄 아는 게 없었는데 너에겐 특히나 그랬다 조용히 밥을 먹는 너보다 더 조용히 밥을 먹으며 너를 고요하고 불편하게 만들었다 나의 고요한 아이야, 가끔은 시끄럽게 너와 선루프를 열고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정적이 찾아올 때 벌거벗은 나의 등을 안아 주던 게 생각난다 너는 작고 나는 포근했다 우린 오래오래 안녕이지만 오래오래 사랑한 기분이 든다 네 머리를 쓰다듬고 강에 뛰어들고 싶다 오래오래 허우적거리며 손의 감촉을 버리고 싶다 한 행성이 내게 멀어져 간 것은 재앙이다 네가 두고 간 것들을 나만 보게 되었.. 더보기
나는 늘 아파 딸기밭을 걷고 있어 자박자박 네게로 가는 길이야 네게선 절망적인 맛이 나는구나 11월의 모든 날은 너를 위한 거야 그러니 날 마음껏 다뤄 줘 고양이처럼 내 쇄골을 핥아 주면 좋겠어 까끌까끌한 네 혀에선 핏빛이 돌겠지 한번 으깨진 마음은 언제쯤 나을까 궁금한 게 너무 많아서 나는 나를 설득할 수가 없어 그래도 네게선 딸기향이 나 세상이 조금 더 우울해지고 있는데도 너는 맛있고 맛있고 맛있어 심장이 뛰어 어느 날 내가 숨을 쉬지 못하면 얌전한 키스를 하면 돼 맛있겠다 그런 식으로 바라보지 마 너는 미소 짓는 법을 다시 배워야겠구나 푸른 박쥐처럼 날고 싶어 밤이 오면 나방 떼처럼 아무 곳이나 쏘다니겠지 온몸에 멍이 들고, 눈물로 얼룩진 발목 쓰다듬어 줄래? 관자놀이 밑을, 턱 선을, 감은 눈을 그러니 날 마음.. 더보기
밤이 되면 속을 게워내고 두 발이 녹고 네가 보였다 밤이 되면 속을 게워내고 두 발이 녹고 네가 보였다 너는 환하게 웃고 있다 ‘날 사랑하니?’ 너는 입모양이 보이는데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너는 너의 존재를 확인하려 자꾸 내게 물었다 너의 입술이 흐려지고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나면 한낮이었다 너는 사라지고 없는데 어디선가 너의 질문이 계속 들렸다 양안다, 이명 더보기
잊지 않겠다고, 내가 너를 참 좋아했다는 것 잠들기 전에 나는 어서 너를 떠올려야지 ​새벽이 목마르고 영원이 썩었는데 다시 눈 뜰 수 있을까?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의심하고 있는 인간의 가장 비천한 순간에 나는 너를 한 번 더 그리워해야지 ​예수는 아무것도 맹세하지 말라고 가르쳤지만 사랑은 씻을 수 없는 죄로 서로의 안부를 맹세하는 것 ​왕도 왕국도 사라진 유적의 돌계단 위에 금방 처형할 것처럼 목을 숙이고 앉아 ​죽이고 싶은 이름들을 수첩 귀퉁이에 적어 내려가던 그 어느 날의 사악함으로 이를 악물어야지 잊지 않겠다고, 내가 너를 참 좋아했다는 것 이응준, 안부 더보기
길이 없어도 나 그대에게 갈 수 있다고 눈을 다 감고도 갈 수 있느냐고 비탈길이 나에게 물었다 나는 답했다 두발 없이도 아니, 길이 없어도 나 그대에게 갈 수 있다고 김현태, 첫사랑 더보기
너를 생각하면 우주 어딘가에서 별이 태어난다 너를 생각하면 우주 어딘가에서 별이 태어난다 폭우가 나에게만 내린다 지금 당장 천둥이라도 껴안을 수 있을 것만 같다 너와 나 사이에 놓인 길의 모래를 전부 셀 수 있을 것만 같다 이름만 읊어도 세상의 모든 것들이 눈물겨워진다 그리움이 분주해진다 나에게 다녀가는 모든 것들이 전부 너의 언어 너의 온도 너의 웃음과 너의 악수였다 지금 생각하니 그게 모두 사랑으로 말미암아 사랑으로 저무는 것들이었다 서덕준, 자목련 색을 닮은 너에게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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