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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 건 하나도 안 무서운데 죽을 것 같은 느낌은 왜 그렇게 싫은지 모르겠어요 죽는 건 하나도 안 무서운데 죽을 것 같은 느낌은 왜 그렇게 싫은지 모르겠어요. 박완서,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 더보기
나는 그 순간 무서움보다는 외로움 때문에 몸을 떨었다 나는 결국 나 혼자일 수밖에 없음을 깨달았고 아무도 지금의 나를 구해줄 수 없다는 걸 알았다. 나는 그 순간 무서움보다는 외로움 때문에 몸을 떨었다. 김후란, 『노래하는 나무』 더보기
너는 사라질 때까지만 내 옆에 있어준다고 했다 얼음장 밑을 흘러왔다고 했다. 힘들었던 건 내가 아니라 겨울이었다고 했다. 우리가 '첫사랑은……' 어쩌구 하는 70년대식年代式 방화邦畵 속에서 눈덩이를 던지며 사랑을 쫓던 늦은 오후에 어느새 너는 서걱이는 마른 대숲을 지나 내 곁에 왔다고 했다. 어머니는 아직도 무릎이 아프다고. 이젠 정말 걸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녹슬은 편지함 속에서 울었다. 그런 밤마다 나는 어머니가 아닌 너를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지난해 따뜻했던 몇 가지 기억들을. 다시 돌아온 너에게, 말 없는 눈발로 내 옆에 서 있었던 쓸쓸함을 묻지 않으리라. 어느 날 막막한 강변로에서 다시 너를 잃어버리고 창문 틈에 너를 기다린다는 연서戀書를 꽂아놓을 때까지. 네가 옆에 없음을 알고 전율戰慄할 때까지. 낡은 자명종의 태엽을 감으며, 너는 사.. 더보기
마음만으로는 될 수도 없고 꼭 내 마음 같지도 않은 일들이 봄에는 널려 있었다 얼마 전 손목을 깊게 그은 당신과 마주 앉아 통닭을 먹는다 당신이 입가를 닦을 때마다 소매 사이로 검고 붉은 테가 내비친다 당신 집에는 물 대신 술이 있고 봄 대신 밤이 있고 당신이 사랑했던 사람 대신 내가 있다 한참이나 말이 없던 내가 처음 던진 질문은 왜 봄에 죽으려 했냐는 것이었다 창밖을 바라보던 당신이 내게 고개를 돌려 그럼 겨울에 죽을 것이냐며 웃었다 마음만으로는 될 수도 없고 꼭 내 마음 같지도 않은 일들이 봄에는 널려 있었다 박 준, 그해 봄에 더보기
끝없이 출렁이는 저 푸른 껍질 한 장을 핀셋으로 집어 올려 거대한 벽에 걸어두면 끝없이 출렁이는 저 푸른 껍질 한 장을 핀셋으로 집어 올려 거대한 벽에 걸어두면 벽에서 푸른 물이 뚝뚝 떨어지겠지 암청색 물감을 칠한 듯 흰 벽이 얼룩지겠지 아래위로 굵은 청색 선이 그어지겠지 거대한 벽은 푸른색으로 굳어 차츰 시퍼런 균열이 생기고 덩어리는 갈라지겠지 물이 굳어서 생긴 푸른 틈이 벽 속으로 스며들어 벽 속은 깊고 깊은 푸른 세계가 생겨나겠지 그 세계 속으로 우리는 유연하게 침입할 수 있을까 삼베로 겹겹이 옷을 만들어 입고 심연으로 풍덩 뛰어들었다 몸을 차례로 물들였다 이 세상의 모든 덩어리는 출렁이고 접히고 또 출렁이는 질료였다 아무것도 끝이 없다 우리는 각자 죽을 때까지 고독할 수 있다 표면은 덩어리이고 덩어리는 심연이다 조용미, 표면 더보기
내가 사랑한 것들은 언젠간 날 울게 만든다 아빠는 말씀하셨다 너무 작은것들까지 사랑하지 말라고 작은 것들은 하도 많아서 네가 사랑한 그 많은 것들이 언젠간 모두 널 울리게 할테니까 나는 나쁜 아이였나 보다 아빠가 그렇게 말씀하셨음에도 나는 빨간 꼬리가 예쁜 플라밍고 구피를 사랑했고 비 오는 날 무작정 날 따라왔던 하얀 강아지를 사랑했고 분홍색 끈이 예뻤던 내 여름 샌들을 사랑했으며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갈색 긴 머리 인형을 사랑했었고, 내 머리를 쓱쓱 문질러대던 아빠의 커다란 손을 사랑했었다 그래서 구피가 죽었을 때, 강아지를 잃어버렸을 때, 샌들이 낡아 버려야했을 때, 이사를 오며 인형을 버렸을 때 그리고,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 그때마다 난 울어야 했다 아빠 말씀이 옳았다 내가 사랑한 것들은 언젠간 날 울게 만든다 신지상 지오, 만화 베리베리.. 더보기
하지만 너에게 무한한 애틋함을 느껴 "날 더 이상 사랑하지 않아?" "사랑하지 않아. 하지만 너에게 무한한 애틋함을 느껴. 평생 그럴 거야." 영화 가장 따뜻한 색, 블루 中 더보기
이봐, 보고 있다면 나를 좀 구해줘 네 동공의 궤도를 돌고 있는 나는 너를 추종하는 위성이야 너의 살갗을 맴돌 뿐인데 내 마음에선 왜 꽃덤불이 여울져? 네 앞에서 나는 왜 언어를 잃어버려? 네가 공전하는 소리는 나를 취하게 해 아득하게 해 나는 허파를 잃어버리지 이렇게 너의 숨소리는 참으로 달콤한 환청이야 이봐, 보고 있다면 나를 좀 구해줘 네게 한 걸음을 못 가 헐떡이는 너의 위성을 서덕준, 인공위성Y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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