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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장 밑을 흘러왔다고 했다. 힘들었던 건 내가 아니라 겨울이었다고 했다. 우리가 '첫사랑은……' 어쩌구 하는 70년대식年代式 방화邦畵 속에서 눈덩이를 던지며 사랑을 쫓던 늦은 오후에 어느새 너는 서걱이는 마른 대숲을 지나 내 곁에 왔다고 했다.
어머니는 아직도 무릎이 아프다고. 이젠 정말 걸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녹슬은 편지함 속에서 울었다.
그런 밤마다 나는 어머니가 아닌 너를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지난해 따뜻했던 몇 가지 기억들을.
다시 돌아온 너에게, 말 없는 눈발로 내 옆에 서 있었던 쓸쓸함을 묻지 않으리라. 어느 날 막막한 강변로에서 다시 너를 잃어버리고 창문 틈에 너를 기다린다는 연서戀書를 꽂아놓을 때까지. 네가 옆에 없음을 알고 전율戰慄할 때까지.
낡은 자명종의 태엽을 감으며, 너는 사라질 때까지만 내 옆에 있어준다고 했다.
허연, 너는 사라질 때까지만 내 옆에 있어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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