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썸네일형 리스트형 여름 팔월은 참 짙고 아득해서 나는 그렇게 있다 여름 팔월은 참 짙고 아득해서 나는 그렇게 있다 이곳엔 볕이 너무 많아 귀하지 않지 다리를 떨면서 다리를 떠는군 생각하면서 나는 아무 건물 아무 이 층 아무 사무실 아무 창문 위에서 볼 수 있는 아무 블라인드와 같은, 여름 팔월의 볕 구석에 매달린 흔하고 틈 많은 사연을 내리며 있다 조금 어두워졌다고 믿는다 나는 조금 어두워졌고 시원해졌다는 믿음 아래 있다 잠자코 검은 양산 하나를 펼쳐 나눠 쓰고 걸어가는 여자들을 본다 여름 팔월은 아랑곳없이 나무 그늘 아래를 지나가듯 걸어가는 그들을 본다 그들을 보고 있던 그런 내가 병과 주의와 주장과 그것들의 크기 그런 것들의 자취 그들의 미래와 후회에 대해 떠들어대듯 여름 팔월, 블라인드처럼 드리워놓은 사연들 속 그 덕분에 조금 어두워지고 시원해진 그 속에서 모든 .. 더보기 언젠가 나는 너였을 것이다 언젠가 인간은 천사였던 적이 있지 않을까. 너의 날개 뼈를 만지면서. 폭약이 누군가의 마음을 뒤흔드는 새벽. 너는 붓을 적시며 말한다. 악마도, 이 세상의 조류도 모두 날개 뼈를 갖고 있다고. 종이가 되길 원한 나무는 너로 인해 하나의 그림이 되어가는 중인데. 어느 신화에 따르면 태양과 달을 신의 눈동자라 믿었다고 한다. 그러나 어느 짐승의 두 눈일지도. 전생에 우리는 꽃이었을지도 몰라. 나는 너의 머리칼을 쓸어 모으면서. 아니. 나는 물이었을 거야. 물을 만질 때마다 불안이 전부 씻겨 내려가거든. 폭약이 우리 불안을 뒤흔드는 새벽. 네가 그린 꽃은 호수에서 목을 적시고 있었다. 짐승의 등 위로 나뭇잎이 돋아나고. 인간은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 불을 만들고 불은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 재를 만든다. 재는 무.. 더보기 지독하게 우는 내가 무섭니 그 노래가 좋았다 쏟아질 듯 쏟아지지 않고 뒤엉키고 마는 벌레를 죽이는데 이유 따윈 생각하지 않았다 지독하게 우는 내가 무섭니 입술을 뜯으며 신경질적으로 왔던 길을 돌아보면 불길한 돌들이 늘어났다 반복되는 전주 반복되는 선율 이곳은 더욱 나빠지고 있다 자장가를 듣는 아이는 왜 그런 얼굴을 하고 있을까 모두들 발도 없이 골목을 회전하고 있구나 너의 뒤에 한 사람이 있어 우울은 새벽 사이로 안개는 환희 너머로 시간이 흐를수록 세계는 무심해진다 박은정, 우울과 환희 더보기 고요를 알기 위해선 나의 고요를 다 써버려야 한다고 너의 말이 진짜라는 것을 믿고 싶지 않았다.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하는 것에 마음이 간 적 없었다. 고요를 알기 위해선 나의 고요를 다 써버려야 한다고. 가두어둔 물, 멈춰 있는 몸. 움직이지 않는 손가락. 버티기 위해선 버틸 만한 곳이 필요했다. 눈동자가 흔들릴 때. 몸은 더 크게 흔들린다. 중심을 잡기 위해 비틀리는 몸짓. 거울이 나를 도와주진 않는다. 노크하기 직전의 마음을. 울 수 없는 마음을. 나는 불 꺼진 창을 본다. 안미옥, 불 꺼진 고백 더보기 나는 너를 먹을 거야 나는 너를 먹을 거야. 너를 먹고 아주 오랫동안 살아남을 거야. 우리를 사람 취급 안 하던 괴물 같은 놈들이 모조리 늙어죽고 병들어 죽고 버림 받아 죽고 그 주검이 산산이 흩어져 이 땅에서 완전히 사라진 다음에도, 나는 살아 있을 거야. 죽은 너와 끝까지 살아남아 내가 죽어야 너도 죽게 만들 거야. 너를 따라 죽는 게 아니라 나를 따라 죽게 만들 거야. 네가 사라지도록 두고 보진 않을 거야. 살아남을 거야. 살아서 너를 기억할 거야. 최진영, 『구의 증명』 더보기 사는 게 그런게 아니라고 누구도 말해주지 않는 밤 누군가 내게 주고 간 사는게 그런 거지 라는 놈을 잡아와 사지를 찢어 골목에 버렸다. 세상은 조용했고, 물론 나는 침착했다. 너무도 침착해서 누구도 내가 그런 짓을 했으리라고는 짐작도 못할 것이다. 그 후로도 나는 사는 게 그런 거지 라는 놈을 보는 족족 잡아다 죽였다. 사는 게 그런거지라고 말하는 이의 표정을 기억한다. 떠나는 기차 뒤로 우수수 남은 말들처럼, 바람 같은. 하지만 그런 알량한 위로의 날들에 속아주고 싶은 밤이 오면 나는 또 내 우울의 깊이를 가늠하지 못하고 골목을 걷는다. 버려진 말들은 여름 속으로 숨었거나 누군가의 가슴에서 다시 뭉게구름으로 피어오르고 있을지 모른다. 고양이도 개도 물어가지 않았던 말의 죽음은 가로등이 켜졌다 꺼졌다 할 때마다 살았다 죽었다 한다. 사는 게 그런게 아니.. 더보기 돌이킬 수 있는 일 따위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 짙은 코트 자락을 흩날리며 말없이 떠나간 밤을 이제는 이해한다 시간의 굽은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볼수록 이해할 수 없는 일, 그런 일이 하나 둘 사라지는 것 사소한 사라짐으로 영원의 단추는 채워지고 마는 것 이 또한 이해할 수 있다 돌이킬 수 없는 건 누군가의 마음이 아니라 돌이킬 수 있는 일 따위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 잠시 가슴을 두드려본다 아무도 살지 않는 행성에 노크를 하듯 검은 하늘 촘촘히 후회가 반짝일 때 그때가 아름다웠노라고, 하늘로 손을 뻗어 빗나간 별자리를 되짚어 볼 때 서로의 멍든 표정을 어루만지며 우리는 곤히 낡아갈 수도 있었다 이 모든 걸 알고도 밤은 갔다 그렇게 가고도 아침은 왜 끝끝내 소식이 없었는지 이제는 이해한다 그만 다 이해한다 박소란, 푸른 밤 더보기 결국 하거나 하지않거나 상관없는 말들 저도 고맙습니다 서로 진심없이 하는 말이므로 알아듣지 못한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반갑고, 고맙고, 사랑하거나 미안해하다가도 헤어지고 또 그 말은 되풀이 될 것이었다 어쩌면 인간의 역사는 대부분 이런 말들로 흘러가는지도 몰랐다 반갑고 고맙다가 그치기도 하고 반갑고 고맙고 사랑하다가 행복을 빌어주기도 하겠지만, 결국 하거나 하지않거나 상관없는 말들. 김선재, 어두운 창들의 거리 더보기 이전 1 ··· 9 10 11 12 13 14 15 ··· 2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