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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세계가 무너지는데 그 와중에 잠든 너는 아름답고 무엇을 할까 무엇을 해야 할까 우리는 각자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는 게 좋을지도 모르지 어떻게 해야 할까, 누구도 대답하지 않았지만 눈을 마주치는 것으로 우리의 마지막을 암묵적으로 동의했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가장 사랑하는 일을 함께하는 것 너는 나에게 동화를 듣다가 잠에 빠지고 싶다고 말했다 그렇게 잠들면 동화가 꿈으로 펼쳐지고 죽은 영혼은 꿈속에서 영원히 살 수 있을 거라고...... 나는 너의 곁에서 네가 잠들어 있는 영화를 보고 싶다고 말하는 대신, "세계는 무너지지 않을 거라는 거짓말을 할 거야. 그다음 너에게 동화를 들려줄게." 너는 눈을 감았지 그리고 나는 말했다 "하지만 세계가 무너지는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으니까." "정말? 그럼 우리는 내일도 볼 수 있는 거야?" "응. 우리는 내일도 .. 더보기
내가 죽으면 어떨 것 같애 내가 죽으면 어떨 것 같애 발이 땅에서 떨어지는 순간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 그때 우리는 여러 가지 모양으로 넘어졌다 어떻게 끝내는 게 가장 아름다울지 죽어본 적이 있는 사람처럼 마지막 자세를 고민했다 ​ 번갈아 가며 추락하다가 허공에서 눈이 마주치면 웃었지 한 번도 같은 곳을 바라보며 우와, 동시에 탄성을 지른적은 없었지만 ​ 집에 갈 시간이야 중력 속으로 내려왔을 때 서로의 몸에서 반짝이는 정전기를 보며 예쁘다, 동시에 생각했을 거다 너를 생각하는 기분은 물고기처럼 튀어 오르다 사라지는 아득하고 선명한 감정 ​ 엄마가 죽으면 어떡하지 외갓집에서 키우던 개가 죽으면 죽으면서 내 생각이라도 한다면 ​ 잊을만하면 네 꿈속에서 죽는 게 내 안부다 백인경, 트램폴린 더보기
사실은, 죽어버린 것들이 세상에서 제일 예뻐 누가 온다고 한 것처럼 냄비를 데우고 칫솔을 샀다 너는 떠나기 전 양치질을 하는 습관이 있고 매운 치약을 다 삼키고 엄살을 부리는 건 내 몫이었지 뱉어놓은 침 모양대로 아스팔트에 얼룩이 졌다 집 밖의 일은 늘 모호했지만 1월의 방아깨비나 내가 버린 고양이처럼 사실은, 죽어버린 것들이 세상에서 제일 예뻐 나는 네 앞에서 박하를 띄운 청산가리를 흔든다 이를 닦으면 잠을 자거나 하루를 더 살아야 한다 오래된 잇자국이 선연한 너의 살갗 언니, 뭐라고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입술이 오므라들어서 네가 나를 못 알아볼 것 같다 익숙한 자음들이 흩어졌다 알파벳의 세계로 너는 외로워 보이는데 나는 이제 시를 안 써 그래도 여기는 네 사랑니가 있는 곳 그러니 서울 오면 연락해 백인경, 서울 오면 연락해 더보기
살아 있긴 한 건가 썩은 달이 지고 징그러운 아침이야, 애인아. 바람을 신으로 모신 버드나무가 미동도 않고 신을 기다리고 쓰레기봉투를 쪼던 까치는 포클레인에 앉아 꽁지를 까닥거리고 있어. 단추알만한 까치의 눈 속에서 번뜩이는 건 그래, 벌레 같은 여름 태양이야. 난 아침이면 이런 생각을 해. 이마에서 수십 개의 뿔이 돋아도 즐겁다, 즐거워야 한다, 뭐 이런…… 안심해. 미치지 않았어. 최소한 네 앞에서는. 피곤할수록 눈동자가 살아나. 너에게서조차 위로의 속삭임이 오지 않으니 난 자주 눈알을 뽑아버리고 싶어. 거울을 빠개는 태양. 뽑지 않아도 저절로 눈알이 녹을 거야. 태양을 떨어뜨리고 싶어. 내 머릿속에 손을 넣어줘. 물파스를 발라줘. 부탁인데 입은 좀 다물어줘. 난 열린 문으로는 들어가고 싶지 않아. 난 순한 것은 즐기지.. 더보기
손을 마주잡을 때마다 부서지는 나를 너는 모른다 지난날에 대해 기억하자면 좁은 방 안에 비가 내리는 나날이었다. 나는 네가 앓는 병의 이력이 적힌 쪽지를 모두 종이배로 접었다. 떠내려가지. 지금의 우리처럼. 그때의 시간처럼. 새벽보다 어두운 기후가 계속되는 한낮이었다. 서로의 상한 머리칼을 잘라주며 우리는 간결해졌지. 창문을 한 뼘만큼 열어놓으면 어느 먼 지역에서 날아왔을 눅눅한 바람이 우리 사이에서 진동했다. 아픈 것들은 모두 반짝일 수 있다고 믿어서. 찢어진 벽지마다 형광별을 붙이며. 우리가 꿈꾸는 건 위험한 속도로 녹는 눈, 조각난 먹구름 사이 찰나의 햇빛, 고인 빗물에 비춰지는 하늘 같은 것. 그러나 병을 감당하려 신음할 때 눈 감은 네가 어느 해변을 떠올리고 있는지 나는 모른다. 그 해변은 어느 기후 속에서 빛나고 있는지 나는 모른다. 그런 .. 더보기
애인에게선 나비 냄새가 났다 애인에게선 나비 냄새가 났다 ​ 날개뼈를 긁어 주면 애인은 애벌레처럼 왼 겨드랑이를 파고들어 온다. 나는 침묵했고 애인은 나비가 되고 싶다는 말을 주문 걸듯 반복했다. 나비처럼 말하고 나비처럼 울고 나비처럼 속상해하며 눈에 띄게 말라 갔다. 며칠씩이 누에잠을 자고 의식이 있을 때도 최소한의 물만 마시고 이따금 냉소 띤 얼굴로 자신의 손목을 깨물어 달라고 했따. ​ 나비의 피가 흐를 것 같아 필사적으로 나비가 되고 있는 애인의 몸부림에 대해 기록하지 않기로 결심한 그 하루조차 우리는 연대한 적이 없었다. 아무도 읽지 않은 책의 두 번째 문장처럼 우리는 겨우겨우 서로를 정다워했을 뿐. 애인은 이제 나비처럼 숨을 쉬는떼 (나만 다시 몇 번이나 몇 번이나 아프도록) 그것이 흉기가 되어 나를 조롱하고 아예 나비가.. 더보기
네가 나를 보고 등대처럼 웃었어 잠시 눈이 멀었던 것은 비밀로 할게 너와 밤을 헤엄치는 꿈을 꿨어 우리는 누구도 발 딛지 않은 섬에 가 닿았어 하늘에는 파도가 치고 아무도 이름 지어 주지 않은 별의 군락이 있었지 이름 없는 물고기 떼가 수면 근처를 은하수처럼 헤엄칠 때 네가 그곳을 가리켰어 나는 쳐다볼 수 없었지 너무 낭만적인 것을 너와 함께하면 벼락처럼 너를 사랑해 버릴까 봐 네가 나를 보고 등대처럼 웃었어 잠시 눈이 멀었던 것은 비밀로 할게 네가 무슨 말을 꺼낼 때 고래의 울음이 머리 위를 지나갔어 너는 내게 불멸처럼 사랑한다 했을까 누구도 믿지 않는 허구의 전설이 너라면 나는 질긴 목숨처럼 믿기로 했어 너는 옅은 거품처럼 사라졌나 꿈 안의 꿈으로 도망쳐버렸나 눈을 뜨니 너는 없고 베개에서 짠내가 났어, 창밖은 여전히 푸른 물로 가득 차 있었지 천 년도 아깝지 않은 .. 더보기
수시로 나는 나를 만나지 못하고 잃어버리곤 해 그녀는 가끔 내게로 소풍 온다. 그녀는 그릇을 닦다말고 골목을 건조하게 바라보는 습관이 있다. 접시가 불안하게 매달린 손 끝으로 여름이 왔다. 죽은 잎과 산 잎을 모두 달고 있는 화분이 제 마음 기우는 쪽으로 넘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말없이 눈만 깊어지는 오후. 그녀가 피는 담배 연기처럼 거대한 적란운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종일 선풍기가 방 안으로 돌아다녔으며, 도시엔 먼지처럼 모래가 흩어졌다. 숨을 곳이 여름밖에 없다면 믿을 수 있겠어? 그러니깐 뭐든 끝이 있지 않겠어요? 종일 라디오를 들었다. 창문 아래로 벽을 지나 온 물의 흔적이 벽지에 죽은 다알리아처럼 피었다. 수시로 나는 나를 만나지 못하고 잃어버리곤 해. 가만히 내 몸을 내려다볼 때 참 쓸쓸해. 골목 어디쯤을 휘청이며 걸어가는 내 마..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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