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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 글귀 & 대사

손을 마주잡을 때마다 부서지는 나를 너는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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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날에 대해 기억하자면 좁은 방 안에 비가 내리는 나날이었다. 나는 네가 앓는 병의 이력이 적힌 쪽지를 모두 종이배로 접었다. 떠내려가지. 지금의 우리처럼. 그때의 시간처럼.

새벽보다 어두운 기후가 계속되는 한낮이었다. 서로의 상한 머리칼을 잘라주며 우리는 간결해졌지. 창문을 한 뼘만큼 열어놓으면 어느 먼 지역에서 날아왔을 눅눅한 바람이 우리 사이에서 진동했다.

아픈 것들은 모두 반짝일 수 있다고 믿어서. 찢어진 벽지마다 형광별을 붙이며. 우리가 꿈꾸는 건 위험한 속도로 녹는 눈, 조각난 먹구름 사이 찰나의 햇빛, 고인 빗물에 비춰지는 하늘 같은 것.

그러나 병을 감당하려 신음할 때 눈 감은 네가 어느 해변을 떠올리고 있는지 나는 모른다. 그 해변은 어느 기후 속에서 빛나고 있는지 나는 모른다. 그런 너를 바라보는 나의 마음을 네가 모르는 것처럼.

나의 마음이 어느 진흙 구덩이를 구를 때에도 너는 오른편에 서서 걷는 사람. 무슨 생각했어? 네가 물었고. 지난 밤 꿈에 대해 생각했어. 내가 대답하면. 그곳 날씨는 어땠어? 네가 다시 물었지.

빛도 희망도 보이지 않는 나날 속에서. 하지만 저 구름 뒤편으로 빛이 존재한다는 걸 알고 있는 나날 속에서. 우리는 조금 웃었고 많이 울었지만.

잠들 때마다 경련하는 너의 팔다리를 주무르며.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가 숨죽여 울던 울음은 한밤의 음악이 되었을까. 창밖으로 쏟아지는 빗소리가 되었을지도. 어떤 꿈속에서 우리는 해변에 누워 파도 소리를 듣는다.

어느 밤이면 나는 꼼짝없이 무너졌으나 다시 쌓아올리지 않았다. 발작하는 너의 잠을 다시 노래하다가. 해변 위에서 빛나는 모래알. 어둠 속에서 너의 눈물이 반짝이는 걸 보았지.

그럼에도 종이배는 어디로도 출항하지 않았다. 우리의 발치에 걸린 종이배들이 침몰하는데 너의 병은 가벼워지지 않고. 너는 몸을 씻으며 물소리에 울음을 숨긴다. 우리의 방은 자꾸 젖고 잠기며 벽지가 찢어지는데.

지난 꿈속에서 너에게 도달하기 위해 몇 개의 바다를 건너 이곳에 도달했는지 너는 모른다. 손을 마주잡을 때마다 부서지는 나를 너는 모른다. 물결과 부딪히는 백사장. 나의 손가락은 너의 손등을 덮으면서.


양안다, 장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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