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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절

너와의 이별은 도무지 이 별의 일이 아닌 것 같다 너와의 이별은 도무지 이 별의 일이 아닌 것 같다. 멸망을 기다리고 있다. 그 다음에 이별하자. 어디쯤 왔는가, 멸망이여. 심보선, 이 별의 일 더보기
울음은 울음답고 사랑은 사랑답고 싶었는데 "세상에는 사람 수만큼의 지옥이 있어." 귀밑머리를 쓸어올리듯이 네가 말했을 때 아름다운 네 앞에 서면 늘 지옥을 걷는 기분이니까 그 어둠 속에서 백기같이 흔들리며 나는 이미 어디론가 투항하고 있었다 네 손금 위에 아무것도 놓아줄 게 없어서 손을 꼭 쥐는 법밖에 몰랐지만 신이 갖고 놀다 버린 고장난 장난감 같은 세상에서 퍼즐처럼 우리는 몸이 맞는다고 믿었었고 언제까지나 우리는 서로에게 불시착하기로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우리가 비는 것은 우리에게 비어 있는 것뿐이었다 삶은 무엇으로 만들어지나? 습관 우리는 살아 있다는 습관 살아 있어서 계속 덧나는 것들 앞에서 삶은 무엇으로 만들어지나? 불행 그것마저 행복에 대한 가난이었다 통곡하던 사람이 잠시 울음을 멈추고 숨을 고를 때 그는 우는 것일까 살려는 것일까 울.. 더보기
푸른 바다가 고래를 위하여 푸르다는 걸 푸른 바다에 고래가 없으면 푸른 바다가 아니지 마음속에 푸른 바다의 고래 한 마리 키우지 않으면 청년이 아니지 푸른 바다가 고래를 위하여 푸르다는 걸 아직 모르는 사람은 아직 사랑을 모르지 고래도 가끔 수평선 위로 치솟아 올라 별을 바라본다 나도 가끔 내 마음속의 고래를 위하여 밤하늘 별들을 바라본다 정호승, 고래를 위하여 더보기
지친 채 커져 버린 사랑을 믿어? 기적을 믿어? 빛에 마구 섞여 드는 빛 입자에서 감아도 떠도 마찬가지인 두 눈 속에서 잠보다 조용히 떠다니는 얼음 조각 위에서 지친 채 커져 버린 사랑을 믿어? 숨을 헐떡이며 돌아온 너는 들려줄 말이 있다고 했지. 태양 빛이 조금 지워 버린 너의 귀는 오래전 우리가 심었던 나무 아래서도 꽁꽁 얼어붙어 있었어. 조그맣고 슬픈 고집처럼, 어설픈 가장자리처럼. 알 수 없는 미래처럼. 너는 가방에서 윤기나는 솔방울 여럿을 꺼내 자랑스레 돗자리에 늘어놓았다. 이건 꿈, 이건 바다, 이건 혼란, 이건 절벽, 이건 플라스틱, 이건 검정, 이건 대통령, 이건 무지개, 이건 건총, 이건 테이블, 이건 기쁨, 이건 침묵, 이건 모서리, 이건 시위대, 이건 용기…… 솔방울 한 알이 이토록 가볍고 평평하고 시시한 우주라니 나.. 더보기
조금만 스쳐도 혀가 베이는 달콤 거짓을 말하는 입안에서 색색의 동그라미가 굴러 나왔지. 혀끝의 평행우주. 헤어짐을 휘감는 중력들. 다정 속에 묻어둔 난간처럼 조금만 스쳐도 혀가 베이는 달콤. 늑골 사이마다 물방울이 매달린 날에는 보름의 문을 열고 들어가 차오르는 수심을 바라봤지. 오래 머금은 고백들 볼 안에 주름질 때, 혀 밑으로 감겨드는 푸른 거품들. 달고 짠 바람이 분다고 너는 두 볼을 부풀리며 웃었다. 방금 도착한 행성을 조금씩 핥아 먹으며, 얼마간 최소한의 깊이로만 스며들기로 했지. 상처 난 뿔을 감춘 채 무리로 숨어드는 어린 사슴처럼. 더 이상 무지개 양 끝이나 물의 뿌리 같은 것들을 생각하지 않기로 했지. 낯설어진 이름을 가볍게 더듬으며 이대로 잠시만 머무르기로. 서투른 허밍으로 풍선을 불며 호흡을 나누었지. 우리의 가장 사.. 더보기
말과 말 사이의 삶들이 아프기 시작했다 아픈 데는 없냐고 당신이 물었다. 없다, 라고 말하는 순간, 말과 말 사이의 삶들이 아프기 시작했다. 이병률, 눈사람 여관 더보기
너를 생각하는 낮은 길고 밤은 짧았어 너를 생각하는 낮은 길고 밤은 짧았어 매일의 악몽이 급행으로 치달을 때면 내처 낡은 철벽들을 향해 내달리고 싶었어 세상 너라는 절벽을 향해 돌진하고 싶었어 궤도 없는 청춘열차처럼 막무가내로 정끝별, 세계의 카트 더보기
잘라내도 잘라내도 평생 자라나고야 마는 "당신은 그를 얼마나 사랑하나요" 하고 묻는다면, 나는 외면하며 "손톱만큼이요" 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돌아서서는, 잘라내도 잘라내도 평생 자라나고야 마는 내 손톱을 보고 마음이 저려 펑펑 울지도 모른다 왕구슬, 손톱깎이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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