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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절

밖에를 못 나가겠어 길 가다 차가 오면 뛰어들고 싶어지니까 "밖에를 못 나가겠어. 길 가다 차가 오면 뛰어들고 싶어지니까. 누가 날 때려줬으면 좋겠어. 욕해줬으면, 아니 죽여줬으면 좋겠어. 나의 고통을 끝내줬으면 좋겠어. 근데 다들 내 탓 아니라고 위로만 해. " 김사과, 『천국에서』 더보기
온통 젖은 채 전부가 아닌 건 싫다고 영혼이 아프다고 그랬다. 산동네 공중전화로 더이상 그리움 같은 걸 말하지 않겠다고 다시는 술을 마시지도 않겠다고 고장난 보안등 아래서 너는 처음으로 울었다. 내가 일당 이만오천원짜리 일을 끝내고 달려가던 하숙촌 골목엔 이틀째 비가 내렸다. 나의 속성이 부럽다는 너의 편지를 받고 석간을 뒤적이던 나는 악마였다. 십일월 보도블록 위를 흘러다니는 건 쓸쓸한 철야기도였고, 부풀린 고향이었고, 벅찬 노래였을 뿐. 백목련 같은 너는 없다. 나는 네게서 살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아침에 일어나면 떨리는 손에 분필을 들고 서 있을 너를 네가 살았다는 남쪽 어느 바닷가를 찾아가는 밤기차를 상상했다. 걸어서 강을 건너다 아이들이 몰려나오는 어린 잔디밭을 본다. 문득 너는 없다. 지나온 강 저쪽은 언제나 절망이었으므로. 잃.. 더보기
꿈의 페달을 밟고 너에게 갈 수 있다면 시시한 별들의 유혹은 뿌리쳐도 좋았다 내 마음 저 달처럼 차오르는데 네가 쌓은 돌담을 넘지 못하고 새벽마다 유산되는 꿈을 찾아서 잡을 수 없는 손으로 너를 더듬고 말할 수 없는 혀로 너를 부른다 몰래 사랑을 키워온 밤이 깊어가는데 꿈의 페달을 밟고 너에게 갈 수 있다면 시시한 별들의 유혹은 뿌리쳐도 좋았다 최영미, 꿈의 페달을 밟고 더보기
내가 사랑한 것들은 왜 그리 짧게 살다 떠나는지, 변하고 돌아서는지 꽃잎들은 긴 바닥과 찰나의 허공이라는 계절을 지나는 중이다. 내가 사랑한 것들은 왜 그리 짧게 살다 떠나는지, 변하고 돌아서는지. 무덤 속에서 튀어 올라오는 사랑과 입맞춤 한다. 나는 북쪽에 산다. 피부는 들판의 풀들처럼 자라면서 늙어가고, 가끔은 잠적한다. 그리곤 튀어 오른다. 무덤 위에 피는 꽃처럼 잠시 아름다워진다. 생일(生日)과 기일(忌日)이여, 점점 더 멀어져라. 나의 울음과 너의 울음이 다르다. 저녁과 아침 사이 밤이여, 점점 더 캄캄해져라. 나는 남쪽에 살고 북쪽에 산다. 바람이 분다. 꽃 피고 진다. 밤하늘이 바닥까지 내려와 있다. 바다에 흐르는 은하수. 바닥의 애벌레 좌. 얼룩진 한쪽 벽 구석의 거미 좌. 이젠 천천히 기어 너에게 간다. 길의 점막에 달라붙은 꽃잎들. 바닥을 물고 빠는 저.. 더보기
죽은 이름들이 너무 많아 내 이름을 잊는 날도 있겠지만 그래도 불러줄 거지?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어. 우리는 밀밭 빛깔 트럭을 타고 있었는데 유리창에 거미줄 같은 금이 가 있었지. 아직 앳된 운전병이 가슴 밖으로 빠져나가는 숨을 힘겹게 몰아쉬고 있었어. 뜨거운 액체가 바지를 적시고 발밑에 작은 고랑을 만들었지만 우린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 비스듬히 고개를 기댄 그는 사과궤짝에 남은 썩은 사과처럼 검붉은 과즙을 흘리고 있었지. 고요한 저녁이 오고 있어. 작은 고랑은 가장자리부터 말라가고 푸른 사과는 입을 조금 벌린 채로 편안해 보였지. 한밤, 더러운 야전침대에 누워 불러야 하는 이름들이 있어. 영문도 모르고 죽은 어린 영혼들. 머리맡에 앉아서 정답게 속삭이는 것들. 죽은 이름들이 너무 많아 내 이름을 잊는 날도 있겠지만 그래도 불러줄 거지? 임현정, 사과궤짝 더보기
삶이 너무 길어요 인생은 형벌같기만 하고 이런 게 다 무슨 소용이겠니 아무도 듣지 못하는 비명의 주머니가 사람마다 하나씩 마음 안에 감춰져 있다고 머리채를 붙든 손은 이리저리 오가고 질끈 눈을 감았나, 그 장면을 내 눈으로 봤다고 믿을 수 없다 아버지, 삶이 너무 길어요 인생은 형벌같기만 하고 하루하루 불 속에서 불을 기다리는 기분 백은선, 불가사의, 여름, 기도 더보기
때론 이렇게 사는 것은 느린 자살과 별반 다를게 없다는 느낌이 들곤 한다 버티는 인생만 살다보면, 자신이 뭐가 하고 싶어 이곳에 왔는지 점점 알 수 없어진다. 아무튼 살아보자고 그것만으로도 족하다 생각하며 지금까지 살아왔는데, 때론 이렇게 사는 것은 느린 자살과 별반 다를게 없다는 느낌이 들곤 한다. 요시모토 바나나, 『그녀에 대하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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