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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 글귀 & 대사

내가 사랑한 것들은 언젠간 날 울게 만든다 아빠는 말씀하셨다 너무 작은것들까지 사랑하지 말라고 작은 것들은 하도 많아서 네가 사랑한 그 많은 것들이 언젠간 모두 널 울리게 할테니까 나는 나쁜 아이였나 보다 아빠가 그렇게 말씀하셨음에도 나는 빨간 꼬리가 예쁜 플라밍고 구피를 사랑했고 비 오는 날 무작정 날 따라왔던 하얀 강아지를 사랑했고 분홍색 끈이 예뻤던 내 여름 샌들을 사랑했으며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갈색 긴 머리 인형을 사랑했었고, 내 머리를 쓱쓱 문질러대던 아빠의 커다란 손을 사랑했었다 그래서 구피가 죽었을 때, 강아지를 잃어버렸을 때, 샌들이 낡아 버려야했을 때, 이사를 오며 인형을 버렸을 때 그리고,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 그때마다 난 울어야 했다 아빠 말씀이 옳았다 내가 사랑한 것들은 언젠간 날 울게 만든다 신지상 지오, 만화 베리베리.. 더보기
하지만 너에게 무한한 애틋함을 느껴 "날 더 이상 사랑하지 않아?" "사랑하지 않아. 하지만 너에게 무한한 애틋함을 느껴. 평생 그럴 거야." 영화 가장 따뜻한 색, 블루 中 더보기
이봐, 보고 있다면 나를 좀 구해줘 네 동공의 궤도를 돌고 있는 나는 너를 추종하는 위성이야 너의 살갗을 맴돌 뿐인데 내 마음에선 왜 꽃덤불이 여울져? 네 앞에서 나는 왜 언어를 잃어버려? 네가 공전하는 소리는 나를 취하게 해 아득하게 해 나는 허파를 잃어버리지 이렇게 너의 숨소리는 참으로 달콤한 환청이야 이봐, 보고 있다면 나를 좀 구해줘 네게 한 걸음을 못 가 헐떡이는 너의 위성을 서덕준, 인공위성Y 더보기
차라리 네가 사라졌으면 좋겠어 내 우울을 낫게 할 생각은 없다 이것이 나를 살려내었으므로 너를 사랑하는 일이 그러했고 사랑하지 않는 일 또한 그랬다 우울이 극에 치닫는 날에는 싫어하던 말들을 잘만 하게 된다 차라리 네가 사라졌으면 좋겠어 낯선 문장에 손가락부터 떨린다 지우고 싶은 말을 종이에 써 버렸다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 지나고 있다 우울의 양단에 네가 서 있다 너를 볼 때면 내 우울마저 내 주고 싶다 향돌, 우울의 양단 더보기
자주 해가 지는 시간이 찾아와서 나는 무서웠다 자주 해가 지는 시간이 찾아와서 나는 무서웠다. 어디쯤에서 저 끝은 시작되었을까. 안녕 잘 지내니, 라는 말을 썼다가 지우고 다시 쓰는 종이는 종이대로 글씨는 글씨대로 이미 어둠에 하나씩 발을 들여놓고서 나는 자주 해가 지는 시간을 기다려 저 어둠의 음질(音質)을 기억하기로 했다. 그러고 나서야 자주 해가 지는 시간이 와도 그래 이제는 괜찮아, 라는 말을 별 뜻 없이 쓸 수 있게 되고 조금씩 밝아 오는 쪽을 바라보기도 했다. 그때쯤에서야 괜찮아 괜찮아 사라지지 않고 반복되는 컴컴한 목소리들 시간은 시간대로 감정은 감정대로 글씨는 글씨대로 괜찮은 거다. 모두가 괜찮은 거다. 여태천, 마지막 목소리 더보기
우리 그냥 통증으로 살까요 우리 그냥 아파할까요 입술과 입술 사이에서 방황하는 그 뜨겁고도 차가운 속삭임 차마 다 발설할 수 없어 입안에 슬며시 피어나는 혓바늘꽃처럼 우리 그냥 통증으로 살까요 밤은 밤이라는 이름으로 캄캄하고 나는 당신이라는 이름으로 조금 더 아득합니다 어제의 창(窓)에서 떠오른 불빛들이 오늘의 아련한 눈빛 사이를 배회하는 동안 우리는 구르는 돌멩이가 가닿는 거리 딱 그 거리만큼에서 조금씩 외롭습니다 묻는다는 것, 그립다는 것, 그리고 아프다는 것, 너무 많아서 오히려 헤픈 그 많은 안부들, 더러워진 밑창들 그렇게 입안이 어두워지면 입 밖으로 외출한 말(言)들의 파문은 누가 보살피나요 달과 지구는 멀지만 멀다고 여전히 먼 사이가 아니듯 입술과 입술 사이에서 우리가 여전히 먼 속삭임이 아니듯 오늘의 말(言)은 오늘의.. 더보기
나는 네 이름을 마주하기 위해 내 슬픔을 소모할 거야 비는 약속 없이 오기로 한다 심장박동처럼 폭우가 쏟아지자 처음으로 나는 안녕을 묻는다 그곳의 여름은 마음에 드니? 나는 네 이름을 마주하기 위해 내 슬픔을 소모할 거야 새를 추방하는 나뭇가지를 이야기할 때 네가 앉아 있는 곳은 뒤바뀐 나의 배경이다 꽃잎은 오래 젖어 차창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그 안에 한때 우리가 있었는데 우산들이 한꺼번에 펴지자 너는 보이지 않는다 ​ 내 왼편 어깨 위 빗방울은 네 오른편 어깨의 자국과 같은 것 심장은 멈추지 않고 우산은 매일 챙기기로 한다 이곳의 여름은 네가 부재하므로 써진다 너는 안다 우리를 지우고 나서야 비로소 내가 남는다는 것을 석지연, 우리가 네가 아니었을때 더보기
어쩌면 당신의 지문은 바람이 수놓은 투명의 꽃무늬가 아닐까 생각했다 먼저 와 서성이던 바람이 책장을 넘긴다 그사이 늦게 도착한 바람이 때를 놓치고 책은 덮인다 ​ 다시 읽혀지는 순간까지 덮인 책장의 일이란 바람의 지문 사이로 피어오르는 종이 냄새를 맡는 것 혹은 다음 장의 문장들을 희미하게 읽는 것 언젠가 당신에게 빌려줬던 책을 들쳐보다 보이지 않는 지문 위에 가만히 뺨을 대본 적이 있었다 어쩌면 당신의 지문은 바람이 수놓은 투명의 꽃무늬가 아닐까 생각했다 때로 어떤 지문은 기억의 나이테 그 사이사이에 숨어든 바람의 뜻을 나는 알지 못하겠다 어느 날 책을 넘기던 당신의 손길과 허공에 이는 바람의 습기가 만나 새겨졌을 지문 ​ 그때의 바람은 어디에 있나 생의 무늬를 남기지 않은 채 이제는 없는 당신이라는 바람의 행방을 묻는다 ​ 그 지문에 새겨진 그 바람의 뜻을 읽어낼 수..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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