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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 글귀 & 대사

죽고 싶다는 말처럼 깊어지도록 밀려오시길 이 막막함이 달콤해지도록 나는 얼마나 물고 빨았는지 모른다. 헛된 예언이 쏟아지도록 나의 혀는 허공의 입술을 밤새도록 핥아댔다. 막막함이여 부디 멈추지 말고 나의 끝까지 오시길, 나의 온몸이 막막함으로 가득 채워져 투명해질 때까지 오고 또 오시길 나 간절히 원했다. 나는 이미 꺾였으니 물밀듯이 내 안으로 들어오시길. 그리하여 내게 남은 것은 나뿐이라는 것도 어쩌면 이미 낡아버린 루머일지 모른다는 사실을 깊이깊이 내 몸속에 새겨주시길. 내 피가 아직도 붉은지 열어보았던 날 뭉클뭉클 날 버린 마음들을 비로소 떠나보냈듯이 치욕을 담배 피우며 마음도 버리고 돌아선 길이 죽고 싶다는 말처럼 깊어지도록 밀려오시길. 막막함으로 밥 먹고 사는 날까지. 이승희, 막막함이 물밀듯이 더보기
오늘도 떠돌다 가리라 그래도 생은 아름다웠으므로 나는 네 속에서 사라지고 싶었다 바람 부는 세상 너라는 꽃잎 속에 활활 불타고 싶었다 비 오는 세상 너라는 햇빛 속에 너라는 재미 속에 너라는 물결 속에 파묻히고 싶었다 눈 내리는 세상 너라는 봄날 속에 너라는 안개 속에 너라는 거울 속에 잠들고 싶었다 천둥 치는 세상 너라는 감옥에 갇히고 싶었다 네가 피안이었으므로 그러나 이제 너는 터미널 겨울저녁 여섯시 서초동에 켜지는 가로등 내가 너를 괴롭혔다 인연은 바람이다 이제 나같은 인간은 안된다 나 같은 주정뱅이, 취생몽사, 술 나그네, 황혼 나그네 책을 읽지만 억지로 억지로 책장을 넘기지만 난 삶을 사랑한 적이 없다 오늘도 떠돌다 가리라 그래도 생은 아름다웠으므로 이승훈, 너라는 햇빛 더보기
괜찮아 아직 바다는 오지 않으니까 바다가 나한테 오지 않았어. 겁먹은 얼굴로 아이가 말했다. 밀려오길래, 먼 데서부터 밀려오길래 우리 몸을 지나 계속 차오르기만 할 줄 알았나 보다 바다가 너한테 오지 않았니 하지만 다시 밀려들기 시작할 땐 다시 끝없을 것처럼 느껴지겠지 내 다리를 끌어안고 뒤로 숨겠지 마치 내가 그 어떤 것, 바다로부터조차 널 지켜줄 수 있는 것처럼 기침이 깊어 먹은 것을 토해내며 눈물을 흘리며 엄마, 엄마를 부르던 것처럼 마치 나에게 그걸 멈춰줄 힘이 있는 듯이 하지만 곧 너도 알게 되겠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기억하는 일뿐이란 걸 저 번쩍이는 거대한 흐름과 시간과 成長 (성장), 집요하게 사라지고 새로 태어나는 것들 앞에 우리가 함께 있었다는 걸 색색의 알 같은 순간들을 함께 품었던 시절의 은밀함을 처음부터 모래로 .. 더보기
헤어질 때 더 다정한 쪽이 덜 사랑한 사람이다 그래봤자 결국 후두둑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일 뿐. 오늘부터 나는 반성하지 않을 테다. 오늘부터 나는 반성을 반성하지 않을 테다. 그러나 너의 수첩은 얇아질 대로 얇아진 채로 스프링만 튀어오를 태세. 나는 그래요. 쓰지 않고는 반성할 수 없어요. 반성은 우물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너의 습관. 너는 입을 다문다. 너는 지친다. 지칠 만도 하다. 우리의 잘못은 서로의 이름을 대문자로 착각한 것일 뿐. 네가 울 것 같은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면 나는 둘중의 하나를 선택하겠다고 결심한다. 네가 없어지거나 내가 없어지거나 둘 중의 하나라고. 그러나 너는 등을 보인 채 창문 위에 뜻 모를 글자만 쓴다. 당연히 글자는 보이지 않는다. 가느다란 입김이라도 새어나오는 겨울이라면 의도한 대로 너는 네 존재의 고독을 타인에게 .. 더보기
타인을 견디는 것과 외로움을 견디는 일 어떤 것이 더 난해한가 ​ 꽃은 시들고 불로 구운 그릇은 깨진다 타인을 견디는 것과 외로움을 견디는 일 어떤 것이 더 난해한가 다 자라지도 않았는데 늙어가고 있다 그러나 감상은 단지 기후 같은 것 완전히 절망하지도 온전히 희망하지도 미안하지만 나의 모자여 나는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허상 녹슬고 부서지는 동상보다는 방구석 먼지와 머리카락의 연대를 믿겠다 어금니 뒤쪽을 착색하는 니코틴과 죽은 뒤에도 자라는 손톱의 습관을 희망하겠다 약속보다는 복숭아의 욕창을 애무보다는 허벅지를 무는 벼룩을 상스러운 빛보다는 거울 속에서 나를 바라보는 희미한 어둠을 캄캄한 길에선 먼 빛을 디뎌야 하므로 날 수 없어 춤을 추고 울 수 없어 노래하는 지상에 흔들리는 찌를 지니고 사는 사람들은 별자리를 그린다 허은실, 목 없는 나날 더보기
파도는 죽어서도 다시 바다였다 종일 마른 비 내리는 소리가 전부인 바다였다 욕실에는 벌레가 누워있고 그것은 죽은 물처럼 얌전한 얼굴, 구겨진 얼굴을 거울에 비추면 혐오는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에 있었다 나는 미개한 해변 위에 몇 통의 편지를 찢었다 날아가는 새들, 날개 없는 새들이 폭죽처럼 터지고 파도가 서로의 몸을 물고 내 발끝으로 와 죽어갔다 한 번 죽은 것들이 다시 돌아와 죽기를 반복하는 백사장에서 떠난 애인의 새로운 애인 따위가 그려졌다 다시 더러워지고는 했다 그대의 손등처럼 바스락거리는 벌레가 욕실에 있었다 벌레는, 곱디고운 소름 같은 어느 여인의 잘라낸 머리칼 같았다 나는 위독한 여인 하나를 약봉지처럼 접고 오래도록 펴보았다 많은 것이 보이고 슬펐으나 한결같이 흔한 것들 뿐이었다 나는 애먼 얼굴을 거울 안에 그렫두었다 잘린 .. 더보기
모두 별을 쫓아 밤이 되길 기원했다 암호로 되어 있었다. 우리는 우리의 아무것도 믿지 않아. 나는 다리가 꺾인 짐승처럼 빙 돌아와 말했다. 아 파 요. 간격을 두고 마디마다. 몸이 찢어진 벌레들 위에 누운 언니는 숨겨진 것들의 작은 아픔을 욕망했고, 핀셋을 들어 관찰했다. 때때로 나는 공포를 가지지 못한 사람처럼 나의 내장에 기생하는 벌레들을 상상했다. 우리는 무력함에 대해 생각했다. 나의 욕망은 너의 아픔보다 중요한 일일까. 너와 나는 우리를 자세히 훼손했다. 눈물이 많아요. 노래하고 춤추고 연기하고 배경이 되고 단역이 되고. 어두운 커튼으로 내려앉아 불빛으로 새어나가고. 우리의 날 속에 쳐진 얇은 막이 눈치채지 못하게. 우리는 서로를 파괴할 때 더 사랑해요. 우리의 사랑은 얼마나 얇고 견고하고 위태롭고 많은 단어의 색을 가졌는지 모릅니.. 더보기
내가 바라는 건 아주 작고 희미한 것들뿐 손을 씻자 낯빛이 검어졌다. 내 어둠의 깊이를 헤아리는 밤. 오래된 망상과 코카콜라와 데스메탈과 카발라와 차오르는 귓구멍의 물기와 너와 나의 아득한 피킹 하모닉스. 나의 기타는 너무 많은 심장을 가진 것처럼 끊어지기 직전의 팽팽한 긴장으로. 새끼손가락이 짧은 나의 운지법은 더듬더듬 춤추듯 절룩거리고. 적막이란 적막 이전에 소리가 있었다는 말. 너무 많은 심장이 우리를 질식하게 한다. 생각한 그대로 끝에서 끝으로 밀고 나아가려 했던 것이 우리의 때아닌 조로의 이유. 너는 사각형의 소녀처럼 울었고 그 뾰족한 모서리가 무심히 나를 찔렀다. 뜬눈으로 꿈속을 들락거리다 다시 술 마시고 담배 피우고 술 마시고 담배 피우고. 시적인 문장을 찾으려 할 떄마다 죄를 짓는 기분. 조금도 시적이지 않은 언어의 빙판 위에서 ..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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