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 글귀 & 대사 썸네일형 리스트형 눈을 감고 눈을 상상해 폭설이 난무하는 언덕에 서 있어 눈이 와, 여긴 함박눈이야 네 목소리를 듣고 별안간 난 한 번도 함박눈을 맞아보지 못한 걸 알았어 평범한 기쁨을 떠나 있는 것 같아 엄청난 사태로부터도 늙은 시인에게서 사랑 없는 일생을 살았다는 말을 들을 때처럼 싱거운 얘기지 눈을 감고 눈을 상상해 폭설이 난무하는 언덕에 서 있어 두 팔을 벌려야 해 입을 쫙 벌린 채 눈덩이를 받아먹어 함박눈은 솜사탕만 할 거야 네게 한 번이라도 함박눈이 되었으면 좋겠어 눈발이 거세지고 조금씩 나는 파묻혀가고 있어 난 하얀 구름이 되어 솜사탕처럼 녹아가네 눈은 죽은 비라고 루쉰이 그랬나? 네 얼굴에 내가 내리면 코가 찡하겠니? 나를 연신 핥으며 달콤해 아 달콤해 속삭일 거니? 나를 베개 하고 나를 안겠지 우린 잠시 젖은 후 흘러갈 거야 너무 싱거운 거 같아 망설인다면 .. 더보기 당신이 적막을 주었고 어떤 생이 남았다 맹세보다 가혹한 일기를 쓴다 그 여름 인생에 대해서 말할 수 있다 (당신은 쓸려갔고 다시 오지 않았다) 그 여름 슬픔에 대해 말할 수 있다 (당신이 적막을 주었고 어떤 생이 남았다) 강은 멀리서 소리를 낸다. 울 수 있는 것도 능력이다. 뒤집힌 채 강물 위로 떠오르는 물고기들은 마지막 방점을 찍는다. 누가 감히 물고기의 크기를 묻고 누가 물고기의 고향을 묻는가. 몰락을 마주할 때도 법도가 있다 부질없는 건 여행이다. 강을 보고도 여행을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는가. 갈 곳을 미리 알고 싶은가. 그곳이 정말 궁금한가. 그곳이 내 것인가 비는 일단 밤에 내리는 게 맞다 허연, 어떤 생이 남았다 더보기 내일은 아무 소용 없어요 모래 위에 적히지 못하는 파도만큼이나요 그어지면 그어질수록 나에게 밀리는 건 나 같아요 마시면 마실수록 우는 사람은 나 같아요 사실 우는 것 같은 기분만 느껴봤지 울어본 적 없어요 밀리면 밀릴수록 도착하게 되는 곳은 바다인데 그곳에 서면 선을 부르게 돼요 하지만 부르면 부를수록 우는 소리 같아서 참아야 해요 참으면 참을수록 얻어지는 건 내일이에요 내일만 몇 년째예요 내일은 아무 소용 없어요 모래 위에 적히지 못하는 파도만큼이나요 이원하, 마시면 마실수록 꺼내지는 건 더보기 어느 쪽이냐 하면 매몰되기를 바라는 편이었다 어느 쪽이냐 하면 매몰되기를 바라는 편이었다 위태해 보이는 산 아래에 쭈그리고 앉아 무너져라 무너져 수색대원들이 손전등을 들고 내 뒤를 왔다갔다했다 들키지 않았다 내가 더 진심이었으니까 들것에 실려 요란하고 따가운 사이렌의 이유로 밝혀질 때에됴 긴 쇠 집게가 모래 알갱이를 골라내어 살 속에서 하나씩 빼앗아갈 때조차 나는 들키지 않고 소란이 차려진 식탁 밑에서 혼자 김밥을 물은 없어도 꾸역꾸역 물의를 일으켜서 미안합니다 용서받고 싶을 땐 몰래 뒤로 가서 머리카락을 땋아 주었다 엄마 건 짧고 곱슬거려서 잘 안 됐다 스탠드 아래 건강한 팔다리를 늘어놓고 햇볕을 묻히고 노는 친구들 양 갈래로 땋은 머리 내가 말을 던지면 꼭 공이 던져진 것처럼 그 자리에 우뚝 번지는 긴장감 그래도 나는 계속 말 걸었다 물 있.. 더보기 슬픔에게서 재주가 늘어나는 것 같아 슬픔에게서 재주가 늘어나는 것 같아 녹슨 대문 앞으로 서성거리는 사람을 글썽거린다고 생각한 적 있었지 망설이던 말이 발을 절며 다가와 매일 낭떠러지에 있다고 나를 종용하고 이제 등에 몰두하자는 말을 했지 두 눈동자의 주름을 펼치며 바라보자고 했지 그러나 너무 많은 슬픔이 기성품이 되어 집에 돌아온다 누구나 붙잡고 말하게 되는 마른 헝겊이 모자란 세계로 출국하고 바닷바람 머금은 손수건을 선물하지 이 모르는 슬픔이 움직이는 이유를 잠깐 떠들고 싶다 비행운의 연기력처럼 포로의 잠꼬대를 닮은 위로만 해댔지 더이상 나눌 수 없는 슬픔은 등에 업고 가려고 해 그 끝이 어딘지 모르지만 헤멜수록 정확해지는 그 주소로 향하려고 해 슬픔의 묘기가 나를 흉내낸다 눈물을 훔치던 네가 어디까지 이야기했었는지 되묻고, 나는 처음.. 더보기 끊어진 말들은 어디서 어긋났을까 언젠가 이름도 없는 공원에 앉아 서로의 숨소리를 듣고 있었지 그때 우린 말이 없었지만 귀를 모으며 부자가 되었고 사랑니로 만든 목걸이를 차고 연인들은 철새처럼 흘러갔다 새 이빨을 다오 젖니가 빠지면 지붕 위로 던졌다는데 옛날이야기는 왜 슬픈 걸까 아기들이 울지 않아도 봄은 올 텐데 하얗게 눈 쌓인 지붕을 머리에 이고 무너질 것처럼 떠나지 못한 집들만 남아서 밤마다 하나씩 담이 헐리는 소리를 듣는다 낡은 이빨이 하나씩 떠나가듯 언젠가 간판도 없는 주점에 앉아 텅 빈 입으로 질긴 이야기를 씹어대겠지 누군가는 몸조차 가눌 수 없겠지만 더 토하고 싶습니까 등 뒤에는 주먹을 쥐고 다그치는 사람들 그건 끝이라는 뜻인데 단 한 발짝 떼지 않고도 떠나는 날이 오겠지 얼어붙은 두 발 사이로 쌓여 있던 마음만 눈사태처럼 .. 더보기 무엇을 바라는가 내일이 없는지 오래되었는데 친절한 사람 꼭 나를 속이는 것만 같아 친절한 사람은 피하고만 싶다 진실한 사람 내가 들킬 것만 같아 진실한 사람 앞에선 늘 불안하다 나는 친절하지도 진실하지도 못하다 속에 무엇이 있는지 본심을 모르는 사람은 무섭고 진심으로 오는 사람은 진실의 무게만큼 무겁다 변심을 하는 사람은 위험하고 변심이 너무 없는 사람도 박제……아니다, 아니다, 다 아니다 차라리 빨리 나는 단무지나 베이컨이 되고 싶다 진심은 복잡하고 입체적인데 진심을 감당하기엔 내내 모가지가 꺾이는 아픔이 있다 내장과 자궁을 발라내고 단무지나 베이컨은 온몸이 조용한 진심이라고 한다면 진심은 한낱 고결한 사치다 말하자면 본심의 배신이자 돼지머리처럼 눌러놓은 꽃이다 프로이트의 박물관처럼 본심은 어둡고 원초적이고 진심 뒤에는 꼭 본심이 도사리고 있는.. 더보기 내가 좋아하는 건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 스투키를 심었던 화분에 바질을 심었다 화분의 입장에서 보면 끝없는 노동 물을 주는 주기와 흙의 마른 정도만 다른 내가 좋아하는 건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 내가 좋다고 한 사람들은 가족사진을 사무실 책상 위에 올려놓은 사람과 피자를 처음 먹어 봤다며 피자집에서 우는 사람뿐이었다 아파트 화단에 심은 꽃나무들이 죽으면 3년까지는 새로 심어 준대 친구는 조경하는 애인한테 들었다고 한다 좋은 싫든 죽을 각오로 사는 거 유효기간을 지날 때까지 어떻게든 버텨 내는 거 바질은 허리가 큰 바지를 입은 것처럼 커진 화분에 담겨 죽지 않으려고 안간힘으로 물을 받아 먹는다 나는 수도꼭지에서 똑똑 떨어지는 물방울을 본다 입을 아ㅡ벌린다 임수현, 조경 더보기 이전 1 ··· 10 11 12 13 14 15 16 ··· 3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