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썸네일형 리스트형 나는 너를 먹을 거야 나는 너를 먹을 거야. 너를 먹고 아주 오랫동안 살아남을 거야. 우리를 사람 취급 안 하던 괴물 같은 놈들이 모조리 늙어죽고 병들어 죽고 버림 받아 죽고 그 주검이 산산이 흩어져 이 땅에서 완전히 사라진 다음에도, 나는 살아 있을 거야. 죽은 너와 끝까지 살아남아 내가 죽어야 너도 죽게 만들 거야. 너를 따라 죽는 게 아니라 나를 따라 죽게 만들 거야. 네가 사라지도록 두고 보진 않을 거야. 살아남을 거야. 살아서 너를 기억할 거야. 최진영, 『구의 증명』 더보기 나는 아무것도 제대로 손에 쥔 적이 없어서 잃을 것도 없지만 온통 잃어버린 것투성이인 것 같은 사람이다 친구는 살아오면서 잃은 것에 대해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고, 나는 잃은 것에 대해 말할 게 없는 사람이다. 친구는 잃었다는 상실감이 충격이 될 만큼 무엇을 가진 적이 있던 사람이고, 나는 아무것도 제대로 손에 쥔 적이 없어서 잃을 것도 없지만 온통 잃어버린 것투성이인 것 같은 사람이다. 김소연, 『시옷의 세계』 더보기 아직 여름의 얼룩은 남아 당신의 여름을 떠올리게 하는 순간이다 당신은 갑자기 얼룩의 소용돌이고 지문이고 옛날의 유리창이다. 당신은 유리창이라는 단어보다 어떤 책의 제목인 유리문이라는 단어를 더 좋아했다 지금 창밖엔 귀뚜라미 울고 아직 여름의 얼룩은 남아 당신의 여름을 떠올리게 하는 순간이다. 당신은 모든 계절이었다. 당신은 그러나 점점 깊어지며 커지고 번지는 소용돌이로 다시 텅 비었다. 내가 당신을 너라 부르거나 당신이라고 부르거나 여보라고 부르거나 어떤 다른 이름으로 불러도 당신의 부재는 더욱 깊어져 이미 볼 수 없고 볼 수 없음으로 나와 함께 있다. 당신은 끈적거리고 더럽고 감미롭고 깨끗하고 부드럽고 질퍽거리며 떼어낼 수 없고 늪이고 죽음이고 또 사랑이고 그리움이다. 그리하여 당신은 끝내 여기에 없다. 당신의 웃음이 가라앉고 있다. 웃음의 반점을 남기며. 문득 .. 더보기 이제 곧 한 세계가 질 것을 예감한 높이 1센티미터 슬픔 거짓말하고 싶다 내 눈은 늘 젖어 있고 나는 개 눈을 이해할 수 있다고 캄캄한 새벽 짖어대는 개들의 속내를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다고 금붕어처럼 세상을 배회하고 있다고 사랑했고 아직도 사랑한다고 벽에 이마를 대고 말하고 싶다 발밑에서 부드러운 뿌리가 썩고 있다 축축한 냄새를 피우며 나는 흙 속에 잠겨 썩은 뿌리를 관찰하는 조그마한 딱정벌레, 이제 곧 한 세계가 질 것을 예감한 높이 1센티미터 슬픔 박연준, 예감 더보기 시간은 자꾸만 북극으로 질주하고 있어 우리는 없는데 시간은 자꾸만 북극으로 질주하고 있어 비로소 수면 위로 달이 차오르면 캄캄한 밤의 방해를 견딘 날갯짓, 나비의 온기, 비행, 그런 것들이 정말 환영 같을 때가 있어 김하늘, 북극 나비 더보기 단 한 번 사랑한 적 있지만 다시는 없을 것이다 나를 번역할 수 있다면 뜨거운 여름일 것이다 꽃가지 꺾어 창백한 입술에 수분하면 교실을 뒤덮는 꽃 꺼지라며 뺨 때리고 미안하다며 멀리 계절을 던질 때 외로운 날씨 위로 떨어져 지금껏 펑펑 우는 나무들 천천히 지구가 돌고 오늘은 이곳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단 한 번 사랑한 적 있지만 다시는 없을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일과 너의 종교와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몇 평의 바닷가와 마지막 축제를 되감을 때마다 나는 모든 것에게 거리를 느끼기 시작한다 누군가 학교에 불이 났다고 외칠 떈 벤치에 앉아 손을 잡고 있었다 운명이 정말 예뻐서 서로의 벚꽃을 떨어뜨린다 저물어가는 여름밤이자 안녕이었다, 울지 않을 것이다 최백규, 네가 울어서 꽃은 진다 더보기 너를 보면 쓸쓸한 바다를 닮는다 바다를 보면 바다를 닮고 나무를 보면 나무를 닮고 모두 자신이 바라보는 걸 닮아간다 멀어져서 아득하고 아름다운 너는 흰 셔츠처럼 펄럭이지 바람에 펄럭이는 것들을 보면 가슴이 아파서 내 눈 속의 새들이 아우성친다 너도 나를 그리워할까 분홍빛 부드러운 내 손이 다가와 돌려가는 추억의 영사기 이토록 함께 보낸 시간이 많았구나 사라진 시간 사라진 사람 바다를 보면 바다를 닮고 해를 보면 해를 닮고 너를 보면 쓸쓸한 바다를 닮는다 신현림, 바다를 보면 바다를 닮고 더보기 너로 시작해 내게 와 흐른 바람은 너를 바라게 했다 너는 나의 바람이었다 개나리 향을 가득 실어서, 나를 채운 초봄 바람이었으며, 민들레 홀씨들을 담아 흐른 여름의 바람이었다 바람, 너로 시작해 내게 와 흐른 바람은 너를 바라게 했다 나는 너를 바람 너는 내게 바람 백가희, 나의 바람 더보기 이전 1 ··· 9 10 11 12 13 14 15 ··· 2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