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썸네일형 리스트형 잊지 않겠다고, 내가 너를 참 좋아했다는 것 잠들기 전에 나는 어서 너를 떠올려야지 새벽이 목마르고 영원이 썩었는데 다시 눈 뜰 수 있을까?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의심하고 있는 인간의 가장 비천한 순간에 나는 너를 한 번 더 그리워해야지 예수는 아무것도 맹세하지 말라고 가르쳤지만 사랑은 씻을 수 없는 죄로 서로의 안부를 맹세하는 것 왕도 왕국도 사라진 유적의 돌계단 위에 금방 처형할 것처럼 목을 숙이고 앉아 죽이고 싶은 이름들을 수첩 귀퉁이에 적어 내려가던 그 어느 날의 사악함으로 이를 악물어야지 잊지 않겠다고, 내가 너를 참 좋아했다는 것 이응준, 안부 더보기 길이 없어도 나 그대에게 갈 수 있다고 눈을 다 감고도 갈 수 있느냐고 비탈길이 나에게 물었다 나는 답했다 두발 없이도 아니, 길이 없어도 나 그대에게 갈 수 있다고 김현태, 첫사랑 더보기 너를 생각하면 우주 어딘가에서 별이 태어난다 너를 생각하면 우주 어딘가에서 별이 태어난다 폭우가 나에게만 내린다 지금 당장 천둥이라도 껴안을 수 있을 것만 같다 너와 나 사이에 놓인 길의 모래를 전부 셀 수 있을 것만 같다 이름만 읊어도 세상의 모든 것들이 눈물겨워진다 그리움이 분주해진다 나에게 다녀가는 모든 것들이 전부 너의 언어 너의 온도 너의 웃음과 너의 악수였다 지금 생각하니 그게 모두 사랑으로 말미암아 사랑으로 저무는 것들이었다 서덕준, 자목련 색을 닮은 너에게 더보기 내 불행을 모조리 팔아 찰나의 행복을 사는 일이 사랑이기도 했다 너는 내가 없다고 세상이 엎어지거나 외로워지거나 사무치지 않겠지만, 나는 네가 없는 작은 순간에도 땅과 하늘이 구분되지 않았다. 안경을 벗고 보는 것처럼 모든 세상의 경계가 흐드러졌다. 와중에도 너 하나만 선명해서 깊이 외로웠다. 너를 만나 내 사랑은 자주 울었지만, 더 환하게 웃기도 했다. 사랑이 하는 일 열 가지 중 아홉이 슬프다면, 하나가 기뻤다. 내 불행을 모조리 팔아 찰나의 행복을 사는 일이 사랑이기도 했다. 백가희, 사랑의 일 더보기 내 사랑이 멸종되게 해 주세요 너무 소중해서 가끔은 꺼내보고 지켜보기만 해도 좋은 사랑해 좋아해 너밖에 없어 같은 말들은 다 단순하고 지겹고 허무맹랑하게 들릴까 봐 더욱 극단적이고 귀 안에 틀어박혀 빠져나오지 않는 말들을 쓰고 싶었다 마치 태초의 언어처럼 태어나자마자 들은 말처럼 그러니까 오늘은 나를 죽여도 돼 멸종하는 동물 대신 내 사랑이 멸종되게 해 주세요 상현, 허영 中 더보기 인간을 무너뜨리는 가장 좋은 방법 인간을 무너뜨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사람의 일부가 되는 것 그리고는 사라지는 것 박가람, 젠가 더보기 왜 죽고 싶은 기분을 기침처럼 숨길 수가 없나 왜 죽음은 발작처럼 예고도 없이 다가오나 왜 죽고 싶은 기분을 기침처럼 숨길 수가 없나 탕, 탕, 탕 꽃망울이 하늘을 향해 고개를 치들어 터지는데 꽃가루가 총알이라 나는 봄볕에 죽음을 갈망하나 그래 꽃가루가 총알이라서 숨을 쉴 때 마다 폐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나 봄은 따뜻한데 나 혼자가 춥다 꽁꽁 언 피부가 염산 처럼 볕에 녹는다 봄햇살에 녹는 것을 보면 나는 눈사람이었나 누가 나를 뭉 쳤 나 장예본, 녹 더보기 내가 죽으면 박제를 해줘 유리병 속에 목소리들. 텅 빈 공중을 울리며 달아나고 있었지 푸른색 이마를 유리벽에 박으며. 무거운 피가 뚝뚝 떨어질 때까지. 이곳에 남은 것은 지치고 늙은 성정들뿐. 동전을 하나씩 흘리며 자신의 주머니를 털어내는 동안. 우리에게 남은 건 보잘 것 없는 슬픔뿐. 내가 죽으면 박제를 해줘. 슬픔도 기쁨도 없이 당신의 방에서 정적만을 먹고 살찌도록. 사람들이 손을 흔든다. 떠나지 못하는 자들과 돌아오지 않는 자들 사이에서. 겨울은 지겹도록 계속되었다. 손가락으로 십자가를 가리키던 동생은 왜 그런 얼굴을 하고 있었을까. 유리병이 굴러간다. 굴러간다. 굴러간다. 이곳에 물이 마르고 있어. 산 사람의 이름에 빨간 줄을 그으며. 박은정, 수색(水色) 더보기 이전 1 2 3 4 5 6 ··· 2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