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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병 속에 목소리들.
텅 빈 공중을 울리며 달아나고 있었지 푸른색 이마를 유리벽에 박으며. 무거운 피가 뚝뚝 떨어질 때까지.
이곳에 남은 것은 지치고 늙은 성정들뿐.
동전을 하나씩 흘리며 자신의 주머니를 털어내는 동안. 우리에게 남은 건 보잘 것 없는 슬픔뿐.
내가 죽으면 박제를 해줘. 슬픔도 기쁨도 없이 당신의 방에서 정적만을 먹고 살찌도록.
사람들이 손을 흔든다. 떠나지 못하는 자들과 돌아오지 않는 자들 사이에서.
겨울은 지겹도록 계속되었다.
손가락으로 십자가를 가리키던 동생은 왜 그런 얼굴을 하고 있었을까.
유리병이 굴러간다. 굴러간다. 굴러간다.
이곳에 물이 마르고 있어.
산 사람의 이름에 빨간 줄을 그으며.
박은정, 수색(水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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