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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귀

우리 그냥 통증으로 살까요 우리 그냥 아파할까요 입술과 입술 사이에서 방황하는 그 뜨겁고도 차가운 속삭임 차마 다 발설할 수 없어 입안에 슬며시 피어나는 혓바늘꽃처럼 우리 그냥 통증으로 살까요 밤은 밤이라는 이름으로 캄캄하고 나는 당신이라는 이름으로 조금 더 아득합니다 어제의 창(窓)에서 떠오른 불빛들이 오늘의 아련한 눈빛 사이를 배회하는 동안 우리는 구르는 돌멩이가 가닿는 거리 딱 그 거리만큼에서 조금씩 외롭습니다 묻는다는 것, 그립다는 것, 그리고 아프다는 것, 너무 많아서 오히려 헤픈 그 많은 안부들, 더러워진 밑창들 그렇게 입안이 어두워지면 입 밖으로 외출한 말(言)들의 파문은 누가 보살피나요 달과 지구는 멀지만 멀다고 여전히 먼 사이가 아니듯 입술과 입술 사이에서 우리가 여전히 먼 속삭임이 아니듯 오늘의 말(言)은 오늘의.. 더보기
난 정말 달인가보다 난 정말 달인가보다 내 안에서는 노을이 지지도 않으며 그에게 미치는 내 중력은 너무도 약해 그를 당길 수도 없다 난 태양 빛을 못 받아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는 불쌍한 달이다 영화 미술관 옆 동물원 中 더보기
나는 네 이름을 마주하기 위해 내 슬픔을 소모할 거야 비는 약속 없이 오기로 한다 심장박동처럼 폭우가 쏟아지자 처음으로 나는 안녕을 묻는다 그곳의 여름은 마음에 드니? 나는 네 이름을 마주하기 위해 내 슬픔을 소모할 거야 새를 추방하는 나뭇가지를 이야기할 때 네가 앉아 있는 곳은 뒤바뀐 나의 배경이다 꽃잎은 오래 젖어 차창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그 안에 한때 우리가 있었는데 우산들이 한꺼번에 펴지자 너는 보이지 않는다 ​ 내 왼편 어깨 위 빗방울은 네 오른편 어깨의 자국과 같은 것 심장은 멈추지 않고 우산은 매일 챙기기로 한다 이곳의 여름은 네가 부재하므로 써진다 너는 안다 우리를 지우고 나서야 비로소 내가 남는다는 것을 석지연, 우리가 네가 아니었을때 더보기
어쩌면 당신의 지문은 바람이 수놓은 투명의 꽃무늬가 아닐까 생각했다 먼저 와 서성이던 바람이 책장을 넘긴다 그사이 늦게 도착한 바람이 때를 놓치고 책은 덮인다 ​ 다시 읽혀지는 순간까지 덮인 책장의 일이란 바람의 지문 사이로 피어오르는 종이 냄새를 맡는 것 혹은 다음 장의 문장들을 희미하게 읽는 것 언젠가 당신에게 빌려줬던 책을 들쳐보다 보이지 않는 지문 위에 가만히 뺨을 대본 적이 있었다 어쩌면 당신의 지문은 바람이 수놓은 투명의 꽃무늬가 아닐까 생각했다 때로 어떤 지문은 기억의 나이테 그 사이사이에 숨어든 바람의 뜻을 나는 알지 못하겠다 어느 날 책을 넘기던 당신의 손길과 허공에 이는 바람의 습기가 만나 새겨졌을 지문 ​ 그때의 바람은 어디에 있나 생의 무늬를 남기지 않은 채 이제는 없는 당신이라는 바람의 행방을 묻는다 ​ 그 지문에 새겨진 그 바람의 뜻을 읽어낼 수.. 더보기
봄이 와도 죽음은 유행이었다 봄이 와도 죽음은 유행이었다 꽃이 추락하는 날마다 새들은 치솟는다는 소문이 떠돌고 창밖엔 하얀 유령들만 날렸다 네 평 남짓한 공간은 개의 시차를 앓고 핏줄도 쓰다듬지 못한 채 눈을 감으면 손목은 파도의 주파수가 된다 그럴 때마다 불타는 별들만 멍하니 바라보았다 누구나 살아 있는 동안 심장 끝에서 은하가 자전한다는 사실을 안다 늙은 항성보다 천천히 무너져가는 지구라면 사각의 무덤 속에는 더러운 시가 있을까 흙에서 비가 차오르면 일 초마다 꽃이 지는 순간 육십 초는 다음 해 꽃나무 퍼지는 담배 향을 골목에 앉아 있는 무거운 돌이라 생각해 보자 얼어붙은 명왕성을 암흑에 번지는 먼 블랙홀이라 해 보자 천국은 두 번 다시 공전하지 못할 숨이라 하자 이것을 혁명이자 당신들의 멸망이라 적어 놓겠다 몇백억 년을 돌아서.. 더보기
봐봐, 우리의 사랑이 얼마나 하찮니 강바람이 말한다. 너의 목소리로 들린다. 사랑은그무엇도될수없단다. 봐봐, 우리의 사랑이 얼마나 하찮니. 우리의 사랑이 얼마나 힘이 없니. 백가희, 미소의 미소 더보기
나의 불행은 누가 꿈꾸던 미래였을까 나를 치열하게 했던 착란들은 어디로 갔을까 창밖 가로등은 제시간에 불을 밝힌다, 여느 때처럼 왜 그래야 하는지도 모른 채 나는 저주하는 이유를 모르고 여전히 저주한다 불행하게 태어나는 건 없다는 당신의 말을 너 따위가 알까, 추락한다는 것 죽을힘으로 뿌리치면 죽을힘으로 되돌아오는 부메랑 같은 인간을 향한 갈망을 사람의, 사람에 의한, 사람을 위한 맹목의 시간 속에 뜨내기 같은 마음의 바큇자국을 망망연히 들여다보다가 나는 무서운 게 없어져버렸다 필연을 따라서 언제든 부고장 물고 이 천공으로 회귀할 철새들 너무 오래 삶의 객지에 노출되어 있었다 죽은 별들의 궤적사진에서 참혹한 선의를 본다 나의 불행은 누가 꿈꾸던 미래였을까 이현호, 궤적사진 더보기
너에게로 가지 않으려고 미친 듯 걸었던 그 무수한 길도 실은 네게로 향한 것이었다 너에게로 가지 않으려고 미친 듯 걸었던 그 무수한 길도 실은 네게로 향한 것이었다 ​ 까마득한 밤길을 혼자 걸어갈 때에도 내 응시에 날아간 별은 네 머리 위에서 반짝였을 것이고 ​ 내 한숨과 입김에 꽃들은 네게로 몸을 기울여 흔들렸을 것이다 사랑에서 치욕으로, 다시 치욕에서 사랑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네게로 드리웠던 두레박 ​ 그러나 매양 퍼올린 것은 수말 갈래의 길이었을 따름이다 ​ 은하수의 한 별이 또 하나의 별을 찾아가는 그 수만의 길을 나는 걷고 욌는 것이다 나의 생애는 모든 지름길을 돌아서 네게로 난 단 하나의 에움길이었다 나희덕, 푸른밤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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