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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귀

때론 이렇게 사는 것은 느린 자살과 별반 다를게 없다는 느낌이 들곤 한다 버티는 인생만 살다보면, 자신이 뭐가 하고 싶어 이곳에 왔는지 점점 알 수 없어진다. 아무튼 살아보자고 그것만으로도 족하다 생각하며 지금까지 살아왔는데, 때론 이렇게 사는 것은 느린 자살과 별반 다를게 없다는 느낌이 들곤 한다. 요시모토 바나나, 『그녀에 대하여』 더보기
십자가가 저렇게 많은데, 우리에게 없는 것은 기도가 아닌가 밤의 도시를 바라볼 때처럼 명확해질 때는 없다. 어두운 천지에 저마다 연등을 달아놓듯 빛나는 자리마다 욕정이, 질투가, 허기가 있다. 이것보다 명확한 것이 있는가. 십자가가 저렇게 많은데, 우리에게 없는 것은 기도가 아닌가. 입술을 적시는 메마름과 통점에서 아프게 피어나는 탄식들. 일테면 심연에 가라앉아 느끼는 목마름. 구할 수 없는 것만을 기도하듯 간절함의 세목 또한 매번 불가능의 물목이다. 오늘은 내가 울고 내일은 네가 웃을 테지만 내일은 내가 웃고 네가 기도하더라도 달라지는 것은 없겠지만 울다 잠든 아이가 웃으며 잠꼬대를 할 때, 배 속은 텅 빈 냉장고 불빛처럼 허기지고 우리는 아플 때 더 분명하게 존재하는 경향이 있다. 아프게 구부러지는 기도처럼, 빛이 휜다. 이현승, 빗방울의 입장에서 생각하기 더보기
다시 태어나지 않게 해주십시오 수염이 없으면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다는 옛이야기를 노인이 되어서야 들었습니다 아침마다 떨리는 손으로 수염을 깎으면서, 그는 새로운 꿈을 꾸게 되었어요 다시 태어난다면 첫 번째로 기도를 하겠습니다 다시 태어나지 않게 해주십시오 스스로 울 수 있는 순간부터 그는 길에서 울고 있습니다 우리는 울면서 태어나는데, 두 번째 기도를 하려고 합니다 다시는 울지않게 해주십시오 그는 수염을 깎고 인공눈물을 넣고 두 손을 모아 흐릿한 시야를 가늠해봅니다 어지러운 햇빛이 쏟아지네요 비밀이 있다면, 세번째 기도를 할 수 있을까요 매일 매일 골목길의 잎들을 쓸어내고 건물의 유리창을 닦으면서 바깥으로 던져진 시간을 확인합니다 인간이 서서 걷기 시작하면서 손이 자유로워졌다고 합니다 왜 이곳의 꽃은 항상 쓰레기 더미 위에서 피어.. 더보기
두려웠다 내가 저 햇살 아래 작고 유순한 것을 죽일 거라는 사실을 알아서 신을 배운 이후로 미안하다는 말보다 죽이고 싶다는 마음이 많았다 세상 모든 곳이 다 오락이어서 캐릭터들이 죽는데 플레이어가 동전을 계속 넣었다 어느 주말 오후 흰 캔버스를 세우고 멍하니 그리워했다 있는 것들만 죽여 저녁을 먹고 다음 날 아침 그 사람을 웃으며 안았다 손끝으로 상대방의 생명선을 끝까지 따라가 본 사람은 죽을 때까지 같이 한다는 비극을 믿었다 우리가 금방 죽을 거라 했다 어젯밤 꿈에 눈이 부어서 오늘도 젖은 하루를 살았다 창밖엔 숲 이외의 것들만 조용히 번져서 우리의 기후가 같을까 무서워졌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날 아무 일 없이 골목을 걸었다 와락 쏟아지다 터뜨려지는 파스텔이다 어두운 식탁에 앉아 찬 음식을 오래 씹어야만 하는 나이 무심히 낯선 여름이 굴러가고 두려웠다 내가 저 햇살 아.. 더보기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 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 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기형도, 질투는 나의 힘 더보기
결국 다 젖게 하는 사람은 한때 비를 가려주었던 사람이다 비가 차창을 뚫어버릴 듯 퍼붓는다 윈도브러시가 바삐 빗물을 밀어낸다 밀어낸 자리를 다시 밀고 오는 울음 저녁때쯤 길이 퉁퉁 불어 있겠다 비가 따닥따닥 떨어질 때마다 젖고, 아프고 결국 다 젖게 하는 사람은 한때 비를 가려주었던 사람이다 삶에 물기를 원했지만 이토록 많은 물은 아니었다 윈도브러시는 물을 흡수하는 게 아니라 밀어내고 있으므로 그 물들은 다시 돌아올 것이다 저렇게 밀려났던 아우성 그리고 아직 건너오지 못한 한사람 이따금 이렇게 퍼붓듯 비 오실 때 남아서 남아서 막무가내가 된다 이규리, 많은 물 더보기
뜨거움이 모자랄 때마다 나는, 발바닥인 것 같아 네가 올 때마다 육각형 눈이 와. 나는 여름 들판에서 너를 기다려. 하얀 벌들이 밤하늘을 뒤덮고, 나의 심장에도 차가운 눈이 내려. 너는 새벽에서 이곳으로 와. 빈방에서 여름으로 와. 그럴 때 너는 너보다 커 보이거나 작아 보여. 그림자놀이처럼. 침엽수에게 어떤 모양의 잎을 달고 싶으냐고 물으면 흰 왕관처럼 얹힌 눈이 녹아버릴까. 북쪽 여왕의 반대말은 북쪽 왕인가 남쪽 여왕인가 남쪽 허름한 소녀인가 소년인가. 이런 걸 궁금해하면 네가 화를 낼까. 담요를 드릴까요. 물어보면 네가 조금씩 녹을까. 녹으면서 허둥댈까. 너는 하얀 자동차를 타고 한 방향으로 가. 추위를 느끼지 못하는 나라로. 눈보라가 치고 침엽수가 자라는 빈방 속의 반방으로. 나는 옆구리나 심장으로 태어났으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할 때가 많아. .. 더보기
잘라내도 살아지는 생은 얼마나 진저리 쳐지는지 꼬리를 잘라내고 전진하는 도마뱀처럼 생은 툭툭 끊기며 간다 어떤 미련이 두려워 스스로 몸을 끊어내고 죽은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스스럼이 없나 한 몸의 사랑이 떠나듯 나를 떠나보내고 한 몸의 기억이 잊히듯 나를 지우고 한 내가 썩고 또 한 내가 문드러지는 동안 잘라낸 마디마다 파문같은 골이 진다 이 흉터들은 영혼에 대한 몸의 조공일까 거울을 보면 몸을 바꾼 나는 나를 알아보지 못 하고 무언가에 잘려나간 자리만 가만가만 만져보는 것이다 심장이 꽃처럼 한 잎 한 잎 지는 것이라면 그런 것이라면 이렇게 단단히 아프진 않을 텐데 몸을 갈아입으면 또 한 마음이 자라느라 저리는 곳이 많다 잘라내도 살아지는 생은 얼마나 진저리 쳐지는지 수억 광년을 살다 터져버리는 별들은 모르지 흉터가 무늬가 되는 이 긴긴 시간 동안 ..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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