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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 글귀 & 대사

덜 망가진 채로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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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때 죽는다는 걸 알 수 있어?
죽으면 어디로 가는 거야?
죽을 때 모습 그대로 죽는 거야?
죽어서도 엄마는 내 엄마야?
때를 가늠하는 나무의 말로
여섯 살 딸이 묻다가 울었다

입맞춤이 싫증나도 사랑은 사랑일까
반성하지 않는 죄도 죄일까
깨지 않아도 아침은 아침일까
나는 나로부터 도망칠 수 있을까
흐름을 가늠하는 물의 말로
마흔 넷의 나는 시에게 묻곤 했다

덜 망가진 채로 가고 싶다
더 이상 빚도 없고 이자도 없다
죽어서야 기억되는 법이다
이젠 너희들이 나를 사는 거다
어둠을 가늠하는 속 깊은 흙의 말로
여든 다섯에 아버지는 그리 묻히셨다

바닥을 향해 피는 상수리 꽃을 마주하여
젖은 물살을 저어가는 지느러미뼈를 마주하여
흙에서 깨어나는 달팽이 촉수를 마주하여
고스란히 제 짐 지고 제 집에 들어앉듯
다문 입술에 맺힌 말간 물집들


정끝별, 묵묵부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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