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어.
우리는 밀밭 빛깔 트럭을 타고 있었는데
유리창에 거미줄 같은 금이 가 있었지.
아직 앳된 운전병이
가슴 밖으로 빠져나가는 숨을 힘겹게 몰아쉬고 있었어.
뜨거운 액체가 바지를 적시고
발밑에 작은 고랑을 만들었지만
우린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
비스듬히 고개를 기댄 그는
사과궤짝에 남은 썩은 사과처럼
검붉은 과즙을 흘리고 있었지.
고요한 저녁이 오고 있어.
작은 고랑은 가장자리부터 말라가고
푸른 사과는 입을 조금 벌린 채로 편안해 보였지.
한밤,
더러운 야전침대에 누워
불러야 하는 이름들이 있어.
영문도 모르고 죽은 어린 영혼들.
머리맡에 앉아서
정답게 속삭이는 것들.
죽은 이름들이 너무 많아
내 이름을 잊는 날도 있겠지만
그래도 불러줄 거지?
임현정, 사과궤짝
728x90
'시 & 글귀 & 대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꿈의 페달을 밟고 너에게 갈 수 있다면 시시한 별들의 유혹은 뿌리쳐도 좋았다 (0) | 2021.05.21 |
---|---|
내가 사랑한 것들은 왜 그리 짧게 살다 떠나는지, 변하고 돌아서는지 (0) | 2021.05.21 |
삶이 너무 길어요 인생은 형벌같기만 하고 (0) | 2021.05.21 |
때론 이렇게 사는 것은 느린 자살과 별반 다를게 없다는 느낌이 들곤 한다 (0) | 2021.05.21 |
십자가가 저렇게 많은데, 우리에게 없는 것은 기도가 아닌가 (0) | 2021.05.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