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 & 글귀 & 대사

무엇을 바라는가 내일이 없는지 오래되었는데

728x90



친절한 사람
꼭 나를 속이는 것만 같아
친절한 사람은 피하고만 싶다
진실한 사람
내가 들킬 것만 같아
진실한 사람 앞에선 늘 불안하다

나는 친절하지도 진실하지도 못하다
속에 무엇이 있는지 본심을 모르는 사람은 무섭고
진심으로 오는 사람은 진실의 무게만큼 무겁다
변심을 하는 사람은 위험하고 변심이 너무 없는 사람도
박제……아니다, 아니다, 다 아니다

차라리 빨리 나는 단무지나 베이컨이 되고 싶다
진심은 복잡하고 입체적인데
진심을 감당하기엔 내내 모가지가 꺾이는 아픔이 있다
내장과 자궁을 발라내고
단무지나 베이컨은 온몸이 조용한 진심이라고 한다면
진심은 한낱 고결한 사치다
말하자면 본심의 배신이자 돼지머리처럼 눌러놓은 꽃이다

프로이트의 박물관처럼 본심은 어둡고 원초적이고
진심 뒤에는 꼭 본심이 도사리고 있는데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진심이 아니라 본심이다
거기까지는 가보고 싶지도 않고 숨겨진 본심이 나는 무섭다
과녁에서 벗어난 마음들을 탁 꺾어버릴 때 나오는 진심,
허심이란다
적어도 단무지는 뼛속까지 노랗고 베이컨은 앞뒤로 하양 분홍 줄무늬다

무엇을 바라는가
내일이 없는지 오래되었는데
무엇을 바라는가
진심이 바래 섬망의 하얀 전류가 냉장고 속에 가득 차 있는데
무엇을 바라는가
단무지와 베이컨 이후는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무엇을 무엇을 무엇을 더 바라는가


김승희, 단무지와 베이컨의 진실한 사람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