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 & 글귀 & 대사

우리는 따뜻해 죽을 수도 있는 열대어를 취급하는 방식에 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었지

728x90



준이치, 그때 우린 궁금해하지 않았지 홀연히 사라지는 재주에 대해서, 서로 단추 없이도 잠기고 라켓도 없이 받아치는 게임을 하면서. 그때 나는 셔틀콕이 걸린 나무가 되어 흔들리고 싶었지 흔들림을 눈여겨봐야 하는 제자리에서 본 우리 얼굴은 지나치게 젊고 초라했어


오래된 노래에 한 시절을 묻고 멀리 와버렸지 준이치, 너와 내가 열렬했던 음악이 우리의 입술을 베꼈다는 착각에 간주를 아슬아슬하게 반복했지 우리는 어떤 노래와도 어울리지 않아 다만 노래가 될 수 있을 뿐 흥얼거림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 채도로, 서로를 물들이고 물드는 게 재난임을 모르고


소복이 내리는 눈, 자발적으로 닫힌 문. 오래된 대만 영화가 시작되고 우리는 자막보다 앞서는 대화를 읊조리고 있었어 이게 다예요 전부였어요 말하지 않는 네게서 많은 걸 받아 적은 날엔 귀가 먹먹해졌지 악보엔 영영 할 수 없는 말들이 새겨져 있었잖아 이것을 연주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우리의 뒷모습뿐이라는 것을


준이치, 네가 떠난 의자에 앉아 생각해 불장난 같았거나 벽난로였거나, 쬐기 좋았던 불씨가 더는 번지지 않는 것이 이상하고 신기해 눈길이 미끄러울 때도 습관처럼 네 이름을 부른다 우리는 우리와 닮은 곳을 찾아 누웠지 도형을 온몸으로 익히며 어지러운 우리의 전개도를 헤맸지 충분히 방황한 줄 모르다가


우리는 따뜻해 죽을 수도 있는 열대어를 취급하는 방식에 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었지 때로는 내버려두면 스스로 질겨지는 돼지가 되어 가장 크게 울고 싶었지만, 우리는 아무도 돼지가 되고 싶지 않은 세련됨이 멋인 줄 알고 준이치, 나는 생각해 따뜻한 스웨터를 입고 턱을 괸 다음, 무너질 일 없는 의자에 앉아 하게 될 말이란 무엇일까


서윤후, 레몬스웨터블루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