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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안다

밤이 되면 속을 게워내고 두 발이 녹고 네가 보였다 밤이 되면 속을 게워내고 두 발이 녹고 네가 보였다 너는 환하게 웃고 있다 ‘날 사랑하니?’ 너는 입모양이 보이는데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너는 너의 존재를 확인하려 자꾸 내게 물었다 너의 입술이 흐려지고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나면 한낮이었다 너는 사라지고 없는데 어디선가 너의 질문이 계속 들렸다 양안다, 이명 더보기
발끝으로 파도가 밀려들었다가 빠져나가곤 했다 눈을 감고 심장 소리를 들었을 때 사과가 떠올랐다 씹고 있던 사과에서 벌레가 나오면 두 눈이 두근거렸다 옷장을 열자 언젠가 받았던 편지지가 우수수 쏟아졌고 방바닥이 젖었다 나는 편지지를 쓸어 모으는데 자꾸만 손바닥이 차가워졌다 다른 사람들이 너의 유서를 찾으며 편지를 가져가려 했다 기억하고 싶은 일보다 반대의 일이 자주 떠오르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네가 옥상에서 춤을 추면 어릴 적에 베란다 밖으로 열대어 하나씩 떨어뜨리던 기억이 났고 숨이 점점 가빠졌다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마다 발끝으로 파도가 밀려들었다가 빠져나가곤 했다 창밖으로 나뭇잎이 떨어지고 비가 내리고 사람이 투신한다면 아직도 옷장에서 쏟아지지 않은 것에 대해 생각했다 언젠가 떨어지기 직전의 열대어와 눈이 마주친 듯한 느낌, 느낌이 추락하고 .. 더보기
계속해서 슬프다 슬프다 슬프다고 중얼거렸어 하나의 입술로 너무 많은 이름을 낭비했구나 내가 나를 모르면서 너를 부르고 또 너를 부르고 슬프다고 말했다 의미가 퇴색될 때까지 계속해서 슬프다 슬프다 슬프다고 중얼거렸어 나는 우리라는 이름 안에서 망가지고 있다 안타까워 사랑을 불신하는 세상 사람들이 마음의 벽을 향해 돌을 던지고 뒤돌아서는 순간 벽이 와장창 무너지고 안타까워 나는 내가 무너질 때마다 억울하고 분해서 어금니에 금이 가도록 이를 다물었다 입속에서 무언가가 씹힐 때마다 너의 창문도 깨져 있겠구나 너도 많이 안타까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고 너의 마음에 돌 던진 이를 모두 죽여야겠어 안타깝다 이제 나는 죽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생겨서 죽지도 못하지 몇 개의 주먹이 쌓여야 하나의 시체가 완성되는 걸까 너를 바라볼 때마다 나는 한 번도 한 적 없던.. 더보기
언젠가 나는 너였을 것이다 언젠가 인간은 천사였던 적이 있지 않을까. 너의 날개 뼈를 만지면서. 폭약이 누군가의 마음을 뒤흔드는 새벽. 너는 붓을 적시며 말한다. 악마도, 이 세상의 조류도 모두 날개 뼈를 갖고 있다고. 종이가 되길 원한 나무는 너로 인해 하나의 그림이 되어가는 중인데. 어느 신화에 따르면 태양과 달을 신의 눈동자라 믿었다고 한다. 그러나 어느 짐승의 두 눈일지도. 전생에 우리는 꽃이었을지도 몰라. 나는 너의 머리칼을 쓸어 모으면서. 아니. 나는 물이었을 거야. 물을 만질 때마다 불안이 전부 씻겨 내려가거든. 폭약이 우리 불안을 뒤흔드는 새벽. 네가 그린 꽃은 호수에서 목을 적시고 있었다. 짐승의 등 위로 나뭇잎이 돋아나고. 인간은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 불을 만들고 불은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 재를 만든다. 재는 무.. 더보기
세계가 무너지는데 그 와중에 잠든 너는 아름답고 무엇을 할까 무엇을 해야 할까 우리는 각자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는 게 좋을지도 모르지 어떻게 해야 할까, 누구도 대답하지 않았지만 눈을 마주치는 것으로 우리의 마지막을 암묵적으로 동의했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가장 사랑하는 일을 함께하는 것 너는 나에게 동화를 듣다가 잠에 빠지고 싶다고 말했다 그렇게 잠들면 동화가 꿈으로 펼쳐지고 죽은 영혼은 꿈속에서 영원히 살 수 있을 거라고...... 나는 너의 곁에서 네가 잠들어 있는 영화를 보고 싶다고 말하는 대신, "세계는 무너지지 않을 거라는 거짓말을 할 거야. 그다음 너에게 동화를 들려줄게." 너는 눈을 감았지 그리고 나는 말했다 "하지만 세계가 무너지는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으니까." "정말? 그럼 우리는 내일도 볼 수 있는 거야?" "응. 우리는 내일도 .. 더보기
손을 마주잡을 때마다 부서지는 나를 너는 모른다 지난날에 대해 기억하자면 좁은 방 안에 비가 내리는 나날이었다. 나는 네가 앓는 병의 이력이 적힌 쪽지를 모두 종이배로 접었다. 떠내려가지. 지금의 우리처럼. 그때의 시간처럼. 새벽보다 어두운 기후가 계속되는 한낮이었다. 서로의 상한 머리칼을 잘라주며 우리는 간결해졌지. 창문을 한 뼘만큼 열어놓으면 어느 먼 지역에서 날아왔을 눅눅한 바람이 우리 사이에서 진동했다. 아픈 것들은 모두 반짝일 수 있다고 믿어서. 찢어진 벽지마다 형광별을 붙이며. 우리가 꿈꾸는 건 위험한 속도로 녹는 눈, 조각난 먹구름 사이 찰나의 햇빛, 고인 빗물에 비춰지는 하늘 같은 것. 그러나 병을 감당하려 신음할 때 눈 감은 네가 어느 해변을 떠올리고 있는지 나는 모른다. 그 해변은 어느 기후 속에서 빛나고 있는지 나는 모른다. 그런 ..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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