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정 썸네일형 리스트형 내가 죽으면 박제를 해줘 유리병 속에 목소리들. 텅 빈 공중을 울리며 달아나고 있었지 푸른색 이마를 유리벽에 박으며. 무거운 피가 뚝뚝 떨어질 때까지. 이곳에 남은 것은 지치고 늙은 성정들뿐. 동전을 하나씩 흘리며 자신의 주머니를 털어내는 동안. 우리에게 남은 건 보잘 것 없는 슬픔뿐. 내가 죽으면 박제를 해줘. 슬픔도 기쁨도 없이 당신의 방에서 정적만을 먹고 살찌도록. 사람들이 손을 흔든다. 떠나지 못하는 자들과 돌아오지 않는 자들 사이에서. 겨울은 지겹도록 계속되었다. 손가락으로 십자가를 가리키던 동생은 왜 그런 얼굴을 하고 있었을까. 유리병이 굴러간다. 굴러간다. 굴러간다. 이곳에 물이 마르고 있어. 산 사람의 이름에 빨간 줄을 그으며. 박은정, 수색(水色) 더보기 지독하게 우는 내가 무섭니 그 노래가 좋았다 쏟아질 듯 쏟아지지 않고 뒤엉키고 마는 벌레를 죽이는데 이유 따윈 생각하지 않았다 지독하게 우는 내가 무섭니 입술을 뜯으며 신경질적으로 왔던 길을 돌아보면 불길한 돌들이 늘어났다 반복되는 전주 반복되는 선율 이곳은 더욱 나빠지고 있다 자장가를 듣는 아이는 왜 그런 얼굴을 하고 있을까 모두들 발도 없이 골목을 회전하고 있구나 너의 뒤에 한 사람이 있어 우울은 새벽 사이로 안개는 환희 너머로 시간이 흐를수록 세계는 무심해진다 박은정, 우울과 환희 더보기 지겨워 지겨워 태어난다는 건 무엇일까 겨울이 지겨울 때마다 그 짓을 했다 길고 나른하게 서로의 몸을 껴안으며 둘 중 하나는 죽기를 바라듯 그럴 때마다 살아 있다는 게 징글징글해져 눈이 길게 찢어졌다 사랑이 없는 밤의 짙고 고요한 계절처럼 이 반복된 허기가 기나긴 겨울을 연장시켰을까 네 손바닥에 모르는 주소를 쓰고 겨울의 조난자들처럼 밤을 찾던 저녁이었지 자꾸 잠이 오는 게 괜찮을까 흔들리는 벽지 아래 서로의 손목을 쥐여주면 꽤 멋진 연인이 되었다 우리는 가짜와 진짜처럼 정말 닮았구나 궁색하게 남은 목숨의 자국이나 껴안으며 가까워질수록 사라지는 표정처럼 지겨워 지겨워 태어난다는 건 무엇일까 나는 울고 있었을 뿐인데 박은정, 긴 겨울 더보기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