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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 글귀 & 대사

너를 사랑해 이 기막힌 재난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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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는 일도 죽는 일도 어떤 먼 곳에서 오는 인간에 대한 복수일지도 모른다*
입술을 벌리네 깨진 유리잔에 내려앉는 파리처럼 너는 얇은 막을 핥았을 뿐인데 양복바지가 젖는구나 내 입술 사이에서 물고기 되어 헤엄치던 너는 막이 오르자 인형처럼 대사를 잊어버린 채 벌벌 떨지 마침내 넌 나의 예리한 혀에 찢기고 내 속삭임에 조종되는가


먼 곳에서 오는 복수를 받듯 넌 내게 반했나 내 얼굴을 입문서처럼 대본처럼 잡고 몰두하는 배우여 오래 쓴 립글로스를 빨아먹는 이 천진스러운 표정 너는 얼마나 깊이 네 속으로 가라앉고 있는가 기다란 키스에 눈꺼풀이 내려오는데


농장 아저씨는 감자 밭에 마늘 밭에 비닐을 씌우네 투명 비닐 반투명 비닐 핑크색 수입 비닐 이 작업을 다 끝내면 일당을 줄게 흙이 싹이 숨도 못 쉴까 봐 나는 몰래 구멍을 뚫었네 황무지였네 비가 올지도 몰라 아저씨는 나를 안고 마늘 냄새나는 주둥이로


껌껌한 정미소에서 나왔을 땐 막이 사라진 후였지 한 여자가 울었네 그 관객은 혼자였으나 별들은 약올리듯 반짝거리지 객쩍은 바람비 불고 극단 정미소의 분장실은 변소만큼 좁아 우리는 남자 화장실에서 입 맞추었네 오 베이비핑크루즈는 내 입술을 보호하지 못하고 오오 나의 브레지어는 네 입술을 차단하지 못하고 미끈한가 스타킹 제기랄 나는 무엇으로 나를 감쌀 것인가


죽어가는 동안만 살아있는 우리는 죽일 것처럼 서로를 핥아대는 우리는 닦으면 고결해지는가 그러고 싶은가 사랑은 어떤 먼 곳에서 오는 복술 렌즈 빼고 저로의 장막을 걷자 우리는 순결하게 섞인다 아아 그러고 싶지만 또 다른 비닐이 필요하다 나는 커피 자판기처럼 일회용 콘돔 자판기도 널린 도시를 설계한다 우리는 초월을 꿈꾸지 않고 콘돔을 끼운 채 우리는 사라져간다 충실히 소모될 것이다 너를 사랑해 이 기막힌 재난과 함께

* 연극「바다와 양산」프롤로그 중에서.


김이듬, 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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