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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 글귀 & 대사

나는 죽음, 세상은 나를 파괴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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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폐쇄된 공간

고요로 머리를 채우고 싶어
세상과 단절했어요.

불행은 불운과 친구죠
희망은 문틈으로 모두 빠져 나가고
불행은 끓는 냄비 같이 웃죠
-왼쪽 가슴에 창문을 낼게 들여다봐

빗소리를 손가락으로 건드려 보며
-책들 앞에서 나를 모욕하지 말아요

하지만,
불행은 내 말을 듣지 않고 빈정대기만 하고
나와 놀았던 빗방울
나에게 얘기해 주었던 강물도 흘러가 버려요

책과 책들은 대화를 하며
나를 비웃고
훌쩍거리던 별들마저 내 마음을 약탈해요

뇌에서 웅크리고 있는 당신은
정신 차리라고 하지만
한 마디도 머릿속으로 들어오지 않고
우울한 악보만을 연주해요

2

레미제라블이 모이는 거리

도시는 산을 고립시키고
나무는 제 몸을 부러트리며 하소연 하지만
어제와 오늘은 부패하여
가진 자들이 만들어 놓은 작품 속에서 나는
밤을 갉는 새앙쥐

소리 없이 흐느끼는 가로수들
정치인처럼 원맨쇼를 즐기는 부자들
부끄러움을 모르는 돌은 광야를 구르며
세상을 찢어 버리려는 듯 두 눈을 번쩍 뜨고
태양은 농익은 참외

-두려움을 모르면 어른이 안 된 다구요?
-태양도 이제 주문해야 되나요?

엘리스 증후군에 빠진 나는
희망 없는 것이 수익이고
가난을 위대하고 황홀한 예술이라며
내 영혼을 당신의 몸속 깊숙이 넣고

‘난 내 생애를 주문한 적 없어’
‘생각이란 사람의 살 속에 박힌 늑대의 이빨이야’
뒤렌마트의 책 속에 숨지만
책 속의 인물이 나를 읽고 어둠이 불빛에 뒤척일 때

나는 죽음,
세상은 나를 파괴해요


이현채, 죽음과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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