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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 글귀 & 대사

사랑은 기다리는 거지 기다릴 것이 없어질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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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밤과 낮이라고 한다.
너는 그게 사랑이라고 한다.
아니야. 사랑은 기다리는 거지.
기다릴 것이 없어질 때까지.
고층 건물이 세찬 바람에 조금씩 흔들리는 것을 본다고.

네 비밀을 내가 다 알면,
내 비밀을 네가 다 알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

그래도 우린 잠든다. 그르렁거리는 숨소리를 들으며 서로의 꿈에서 등을 돌린다. 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천막 위로 빗줄기가 쏟아진다. 투둑투둑. 천장과 바닥이 호응하고, 우리는 그 사이에 누워 기다리나. 열매가 떨어지기를. 땔감이 모자라기를. 마른 풀이 전부 젖어 버리기를. 우리가 관통하는 물방울들.

모두 서로 배반할 거라고 맨 뒷장에 씌어져 있었지.

우리는 기다린다.

우리가 서로를 죽이기 전에,
너희가 서로를 죽이기를.

떠오를 때는 가라앉는 느낌도 들곤 해.

저 산산이 부서지는 아름다운 창들을 보렴.
이토록 커다란 텅 빔을.
끝과 끝이 연쇄하는 꼴을.

다 지워버릴 것을 계속해서 적어 내려가는 저 불쌍한 손들을. 이미 씌어진 것들을 다시 반복하는 아무도 붙잡아 주지 않는 차가운 마디를. 아름다운 것은 참 무서운 것이구나. 그렇지 않니. 네가 나를 죽이는 꿈을 꿨고, 그 꿈을 믿어. 그래서 더 큰 기다림도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다.

그렇게 사랑해.

이것은 언어가 아니고, 이것은 빛이 아니고,
이것은 거울이 아니고, 이것은 칫솔이 아니고,
이것은 향기가 아니고, 이것은 십자가가 아니고.
엎드린 너희가 포개져 있을 때,
나는 인생이란 뭘까 생각해.

너는 내게 진실만을 말했으면 좋겠어.
진실만은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철장을 가운데 둔 채 벽에 등을 붙이고 마주 앉아 우리는 두 아이에 겹친 서로의 모습을 바라볼 뿐이다.

우리는 사랑에 관한 비유로 낱말 놀이를 하기로 했어.

너는 치즈, 소금, 얼음이라고 말했어.

나는 입이 없는 것처럼 조용히 웃었어.

왜 사라진 것들 뿐이니.

구름, 바다, 비라고 내가 대답했어.

그렇다면 도처에 사랑이 있겠네.

빈정대며 네가 말했지.

나는 끝까지 말하지 않았어.
우리라고.


백은선, 밤과 낮이라고 두 번 말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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