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728x90

이혜미

조금만 스쳐도 혀가 베이는 달콤 거짓을 말하는 입안에서 색색의 동그라미가 굴러 나왔지. 혀끝의 평행우주. 헤어짐을 휘감는 중력들. 다정 속에 묻어둔 난간처럼 조금만 스쳐도 혀가 베이는 달콤. 늑골 사이마다 물방울이 매달린 날에는 보름의 문을 열고 들어가 차오르는 수심을 바라봤지. 오래 머금은 고백들 볼 안에 주름질 때, 혀 밑으로 감겨드는 푸른 거품들. 달고 짠 바람이 분다고 너는 두 볼을 부풀리며 웃었다. 방금 도착한 행성을 조금씩 핥아 먹으며, 얼마간 최소한의 깊이로만 스며들기로 했지. 상처 난 뿔을 감춘 채 무리로 숨어드는 어린 사슴처럼. 더 이상 무지개 양 끝이나 물의 뿌리 같은 것들을 생각하지 않기로 했지. 낯설어진 이름을 가볍게 더듬으며 이대로 잠시만 머무르기로. 서투른 허밍으로 풍선을 불며 호흡을 나누었지. 우리의 가장 사.. 더보기
육중한 물의 몸, 고요한 심해의 눈빛 머리를 누르는 손에 대해 이야기한 적 있지. 육중한 물의 몸, 고요한 심해의 눈빛. 눈길 닿는 곳마다 분연히 어둠을 뿜어내는, 먼 먼 바다의 바닥. 그러나 바다는 바닥도 물의 입체도 아니었지. 바다는 다만 땅의 천장, 전구를 갈기 위해 길게 뻗은 손처럼 우리는 나란히 몸을 세우고 세상 가장 어둡다는 빛을 찾으러 갔었다. 가득히 입을 벌려 아직 남은 대기와 키스해. 오직 키스로만 인간은 말을 잊는다. 말을 버리고 입 속의 심해로 잠수해 들어가…… 그건 사람의 천장이거나 낮의 바닥. 지구가 껴입은 빛나는 외투의 안감. 몸속의 공기방울들이 급격히 팽창하고 안팎이 서로를 침범하는 자리에 대하여. 사람의 몸이 견뎌내야 하는 색(色)과 압(壓)의 연합군에 대하여. 이야기한 적 있지. 우리는 낯선 수면으로 떠올라. .. 더보기
사람의 귀퉁이는 조금씩 슬픈 기척을 가졌지 입 안에서 별들이 자라나는 저녁에는 자주 피를 흘렸다 찔린 자리마다 고여드는 낮은 지붕들 흘린다는 말은 다정했기에 사람의 귀퉁이는 조금씩 슬픈 기척을 가졌지 팔꿈치를 부딪치면 차가운 빛으로 가득해지던 몸속 감싸 쥔 자리가 얼룩으로 깜빡이면 불가능에 대해 생각해 모름의 온도와 진눈깨비의 각도에 대해 내리던 비가 얼어 몸을 걸어 잠글 때 창문은 무슨 꿈을 꾸나 흐르던 비가 멈칫 굳어갈 때 몸은 조금만 스쳐도 달아나는 방향들이 있어 겨울의 창틀은 더욱 분명해지고 비의 마음이 어긋난 자리마다 버려진 경계들이 무성해졌다 눈사람처럼 모서리를 버려가며 잠겨들고 싶었지 드물다는 말은 점차 희미해져서 깨어진 잔에 입술을 대고 겨울이 오기만을 기다렸어 이혜미, 순간의 모서리 더보기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