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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 글귀 & 대사

벚꽃의 점괘를 받아적는 일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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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기운도 참
바람이 이렇게 달아 살살 간지럽겠다

몽글몽글 벚꽃의 아치 아래서
당신은 봄의 호작질에 놀아나는 중이다
시시로 연인의 입술에 달라붙은 꽃잎을
흡- 하고 숨결로 떼어내거나
꽃을 먼저 보낸 성급한 푸른 잎이
연인의 분홍 잇몸에 돋아나는 걸 보겠다
혹은 흩날리는 벚꽃이 허투루 흘리는 점괘 따위를
받아 모시거나, 애면글면하거나

구운몽에 문자로 수작을 건넨다는 말이 있다
오늘의 문자는 다름 아닌 벚꽃의 아스라한 점괘,
쉬 풀리는 점괘는 사설일 뿐 오래 헤매도 좋을 당신이겠다
마침 연인의 입매가 쉽사리 홀릴 운산은 아닌데,
애간장이라도 살살 무쳐
연인의 입맛을 돋울 수 있다면

그러니 당신, 화전놀이에 수작이 빠져서야 될까
꽃술이 서로의 입술에 번지듯 물들고
술잔의 꽃잎 돌 듯 꽝꽝 언 피가 돌고 나서야
비로소 꽃이 꽃처럼 보이는 경지

벚꽃의 점괘를 받아적는 일이란
꽃이 꽃처럼 보이는 찰나에
바람의 운율로 꽃비가 내리기 시작하는 것처럼 얄궂은 일
혹은 그 꽃비를 두 손에 받아 모으려는 어리석음
가는 봄날 벚꽃의 저 흩날림은
안 들리던 점점의 향기가 허공에 잠시 머무르는 것일 뿐
빈 점괘는 꽃의 후대에나 돋아날 일

봄은 파열음이다
그러니 당신, 오늘의 봄밤
꽃잎의 파열음에 귀가 녹아 좋은 곳 가겠다
생을 저당 잡히고도 점괘 받는 일이 잦을 당신이겠다


이은규, 벚꽃의 점괘를 받아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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