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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누르는 손에 대해 이야기한 적 있지. 육중한 물의 몸, 고요한 심해의 눈빛. 눈길 닿는 곳마다 분연히 어둠을 뿜어내는, 먼 먼 바다의 바닥.
그러나 바다는 바닥도 물의 입체도 아니었지. 바다는 다만 땅의 천장, 전구를 갈기 위해 길게 뻗은 손처럼 우리는 나란히 몸을 세우고 세상 가장 어둡다는 빛을 찾으러 갔었다.
가득히 입을 벌려 아직 남은 대기와 키스해. 오직 키스로만 인간은 말을 잊는다. 말을 버리고 입 속의 심해로 잠수해 들어가…… 그건 사람의 천장이거나 낮의 바닥. 지구가 껴입은 빛나는 외투의 안감.
몸속의 공기방울들이 급격히 팽창하고 안팎이 서로를 침범하는 자리에 대하여. 사람의 몸이 견뎌내야 하는 색(色)과 압(壓)의 연합군에 대하여.
이야기한 적 있지. 우리는 낯선 수면으로 떠올라. 그건 오래 길러온 몸 속 바다를 뒤집어 서로에게 내어주는 일이었다고.
이혜미, 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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