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728x90

허수경

사랑해, 네 눈물이 지하수를 타고 올 만큼 날 사랑해 줘 가끔 너를 찾아 땅속으로 내려가기도 했단다 저 침침하고도 축축한 땅속에서 시간의 가장자리에만 머물러 있던 너를 찾으려 했지 땅속으로 내려갈수록 저 뿌리들 좀 봐, 땅에는 어쩌면 저렇게도 식물의 어머니들이 작은 신경줄처럼 설켜서 아리따운 보석들을 빨랫줄에 걸어두는데 저 얇은 시간의 막을 통과한 루비나 사파이어 같은 것들이 땅이 흘린 눈물을 받은 양 저렇게 빛나잖아 가끔 너를 찾아 땅속으로 내려가기도 했단다 사랑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세월 속으로 가고 싶어서 머리를 지하수에 집어넣고 유리처럼 선명한 두통을 다스리고 싶었지 네 눈에 눈물이 가득할 때 땅은 속으로 그 많은 지하수를 머금고 얼마나 울고 싶어 하나 대양에는 저렇게 많은 물들이 지구의 허리를 보듬고 안고 있나 어쩌면 네가 밤 속에 누워 녹아갈 때.. 더보기
깊은 어느 모서리에서 자란 달에 레몬 냄새가 나서 내 볼은 떨린다 당신의 눈 속에 가끔 달이 뜰 때도 있었다 여름은 연인의 집에 들르느라 서두르던 태양처럼 짧았다 당신이 있던 그 봄 가을 겨울, 당신과 나는 한 번도 노래를 한 적이 없다 우리의 계절은 여름이었다 시퍼런 빛들이 무작위로 내 이마를 짓이겼다 그리고 나는 한 번도 당신의 잠을 포옹하지 못했다 다만 더운 김을 뿜으며 비가 지나가고 천둥도 가끔 와서 냇물은 사랑니 나던 청춘처럼 앓았다 가난하고도 즐거워 오랫동안 마음의 파랑 같을 점심식사를 나누던 빛 속, 누군가 그 점심에 우리의 불우한 미래를 예언했다 우린 살짝 웃으며 대답했다, 우린 그냥 우리의 가슴이에요 불우해도 우리의 식사는 언제나 가득했다 예언은 개나 물어가라지, 우리의 현재는 나비처럼 충분했고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그리고 곧 사라질만큼 아름다웠다.. 더보기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