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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하

눈동자 하나 없는 섬을 걸었다 말 그대로 눈동자 하나 없는 섬을 걸었다 가을이 서러워서 그랬다 바다는 하늘을 가졌고 때때로 내 얼굴을 가지기도 하였지만 나는 그저 빈 섬에 몸담은 유일한 슬픔이었다 글이 책에 묶여 있는 것처럼 숲에 묶여 있는 유일한 슬픔이었다 언제 흘렸는지 모르는 내 얼굴을 바다 표면에서 발견하는 것처럼 혼자 있어야 발견될 수 있는 슬픔이었다 혼자 있어서 발견된 질문도 하나 있었다 섬은 무엇으로부터 시작되었나 답을 허공에 부탁했을 때 아무런 대답이 없었으므로 내 나름대로 생각해야 했다 생각은 가꿔도 칙칙했다 불어오는 바람에 기적은 없었다 기적을 바라지 않으니 참을 것도 없었다 빛을 비춰볼 것도 없었다 이원하, 눈동자 하나 없는 섬을 걸었다 더보기
내일은 아무 소용 없어요 모래 위에 적히지 못하는 파도만큼이나요 그어지면 그어질수록 나에게 밀리는 건 나 같아요 마시면 마실수록 우는 사람은 나 같아요 사실 우는 것 같은 기분만 느껴봤지 울어본 적 없어요 밀리면 밀릴수록 도착하게 되는 곳은 바다인데 그곳에 서면 선을 부르게 돼요 하지만 부르면 부를수록 우는 소리 같아서 참아야 해요 참으면 참을수록 얻어지는 건 내일이에요 내일만 몇 년째예요 내일은 아무 소용 없어요 모래 위에 적히지 못하는 파도만큼이나요 이원하, 마시면 마실수록 꺼내지는 건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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