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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속에 있으면 비를 잊을 수 있다 물속에 있으면 비를 잊을 수 있다 침대도 편지도 없고 마른 것도 없다 몸을 한껏 펼친다 머릿속에서 눅눅한 페이지들이 천천히 녹아내린다 물속은 가득 차 있다 물고기들이 제 몸속으로 음악을 삼키고 있다 배 속에 진회색 구름이 차오른다 물속에는 갈림길이 없다 잠길 수 있다 결빙이 없다 표정처럼, 얼음은 언제나 바깥부터 시작된다 목욕도 없다 가끔 숲이 있다 흔들리는 부드러운 나무들 물속에서는 옷장이 필요 없다 그 사이에서 물고기들은 헐벗거나 먹거나 마신다 말없이 그러나 물고기들은 음악을 풍기고 있다 수면이 얼어붙는 동안에도 풍만한 냄새로 가득 찬 움직이는 음표 물속에서 누군가의 뺨을 때릴 수 있었다면, 상대방이 멈추기로 결심했기 때문에 가능한 음악이 있다 물속에는 식탁이 없다 마주 볼 필요 없다 비명 없이 우리.. 더보기
그날 이후로 너무 푸른 것은 구분할 수 없었다 그날밤, 바다에서 우리가 보았던 것은 해변의 놀이공원, 부모와 아이 하나로 이루어진 현대적 가족, 요란스럽기만 한 불꽃놀이와 어떤 기대 속에서 몸을 붙여 걷던 연인들 "바다 냄새는 죽은 생물들이 내는 냄새래" 그렇게 말하던 너의 살은 푸르고 짠 냄새가 났지 그날 이후로 너무 푸른 것은 구분할 수 없었다 누군가의 발자국을 따라 홀로 걸었다 이제 해변에는 아무도 없구나 바닷가의 텅 빈 유원지, 출렁이는 검은 모래, 죽은 물새떼와 영원히 푸른 달빛 "너를 다시 볼 수 있어서 참 좋다" 네가 말했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눈앞에 펼쳐진 밤과 바다가 구분되지 않았다 그것을 지켜보던 두 사람이 구분되지 않고, 너를 생각하는 이 마음이 무엇인지 구분되지 않는다 해변의 발자국은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나는 .. 더보기
이대로는 익사할 거라고 말한다 나는 물을 좋아하고 너는 물을 좋아하지 않는다 우리는 갈증으로 대립한다 물은 너의 감정이다 너의 기분에 따라 그날의 컵이 바뀌고 물의 온도가 달라진다 태도는 미온적이다 너는 웅크리고 있거나 드러누워 있다 나갔다 돌아오면 방은 침수되어 있다 너는 금붕어 두어 마리를 기르고 있다 그것들은 서로 먹고, 교배하고, 낳고, 먹기를 반복한다 창은 굳게 닫혀 있다 이대로는 익사할 거라고 말한다 너는 듣지 않는다 벽지는 자주 바뀐다 붉었다가 푸르렀다가, 꽃잎 무늬였다가 방울 무늬가 된다 나갔다 돌아오면 방은 침수되어 있다 벽지는 젖어 있다 너처럼 물고기들은 벽의 감정을 배운다 바라보거나 바라보지 않거나 물고기는 식탁 유리를 좋아하고 창의 유리를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유리를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살아 있는 아무것도 기르..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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