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가도 가도 여름이었죠. 흩어지려 할 때마다 구름은 몸을 바꾸고 풀들은 바라는 쪽으로 자라요. 누군가 길을 묻는다면 한꺼번에 쏟아질 수도 있겠죠. 쉼표를 흘려도 순서는 바뀌지 않으니까. 곁에는 꿈이니까 괜찮은 사람들. 괄호 속에서 깨어나는 사람들. 지킬 것이 없는 개들은 제 테두리를 핥고 햇빛은 바닥을 핥아요. 나는 뜬눈으로 가라앉고요. 돌 속에는 수많은 입들이 있고, 눈을 가린 당신이 있어요. 빗소리는 단번에 떨어져 수만 번 솟구치구요, 앞도 뒤도 없이 일제히 튀어 오르는 능선들. 갈 데까지 가고서야 공이 되는 법을 알았죠. 잎사귀처럼 바닥을 굴러 몸을 만들면, 바람을 숨긴 새처럼 마디를 꺾으면, 안은 분명할까요. 뼛속을 다 비우면, 바깥은 안이 될까요. 아직 가도 가도 어둠이에요. 하루가 가도 하루가 남는, 손을 뒤집어도 손이 되는. 그러니 당신, 쓴 것을 뒤집어요. 다시 습지가 될 차례에요.
김선재, 열대야
728x90
'시 & 글귀 & 대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래요, 사랑은 나의 치명적인 약점이어서 사랑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어서 (0) | 2021.05.25 |
---|---|
살면서 중요하다고 생각해왔던 것들이 실제로는 대단치도 않았다 (0) | 2021.05.25 |
관광지가 되는 건 너무 슬픈 것 같아 (0) | 2021.05.24 |
그러니 모두 내게서 서둘러 하차하고 만 게 아닌가 (0) | 2021.05.23 |
누가 다정하면 죽을 것 같았다 (0) | 2021.05.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