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거 있지. 정말 별 게 아닌데 별거처럼 버릴 수 없던 것들. 새로 사면 되는데도 이거여야만 한다고 고집하던 거 있잖아. 누군가에겐 징크스일 수도 있고, 또 어떤 사람에겐 행운의 부적이라 여겨지는 존재들. 뭐랄까. 하나 남은 담배는 태우면 안 된다고 말하거나 매일 하는 팔찌인데도 하루의 운세를 이끌어줬다고 믿게 되는 거. 상황에 사물을 대입해서 철석같이 믿거나 아니면 그 결정을 한 나를 대신해 신랄하게 욕할 수 있었던 것들.
너는 그런 사람이었어. 내가 우연히 잡은 행운인데도 네가 곁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믿었고, 내 실수로 망쳐버린 일이었지만 네가 내 옆이 아닌 현실 때문이라 생각했어. 너는 내 징크스, 행운의 부적,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이 뭐냐고 물으면 네가 먼저 나올 정도로 내 세계에서 너는 내 꿈속까지도 지배해버린 신이었던 거야. 사랑하면 눈이 먼다고 하잖아. 마치 그런 것처럼. 나는 이 쓸개고, 간이고, 눈이고 심지어 머리털까지 네게 바칠 것처럼 너만 믿었었어. 네게 나는 너를 사랑하는 그 많은 신도 중 하나였음이 분명할 테지만.
궁금해. 이별은 서로 사랑한 이들에게만 주어지는 걸까? 내 짝사랑을 포기하는 건 이별이 아니야? 나는 네가 평생이라고 생각했는데, 네게 나는 하나의 장식품이었을 테지만, 제풀에 지쳐 나가떨어지는 내 사랑은 이별을 고할 자격도 없는 걸까. 가끔은 자괴감이 들어. 이 나약한 사랑을 시작한 내가 이렇게 볼품없진 않았는데 하고서 말이야.
그래서 이제 이별을 말하려고 해. 밤을 지새우고 낸 결론이야. 너는 내가 마저 태우지 못하는 담배 같았고, 내팽개칠 수 없는 손길이었고, 날 지독히 따라오는 달빛이었고, 등질 수 없는 햇빛이었어. 최대치의 행운이 너였고, 최고치의 불행은 너의 부재였어. 사랑해. 오늘까지만 말하는 거야. 내일부터 나는 또 자연스럽게 징크스로 괴롭고, 행운의 부적이 없어 벌벌 떨 테지만 드디어 너 없이 살겠다는 거야. 단 한 번도 나의 불행에 너를 이입한 적은 없어, 네가 없는 현실을 슬퍼했지. 근데 지금 내가 이렇게 슬픈 건 오로지 너 때문이야. 하나만 기억해 줘. 널 많이 사랑해서 믿었고, 따라서 빠졌고, 헤어나오지 못한 거야.
그리고 지금은
네가 날 택하지 않은 게 아니라, 내가 널 버리는 거야.
잘 가. 이게 내 첫 이별 선고야. 나의 (). 어떤 말로도 채울 수 없는 나의 너. 오늘까지 너를 사랑해서 여기의 나는 끝까지 기쁠 거야.
백가희, 당신이 빛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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